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의동 에밀리 Apr 25. 2024

모유수유를 안했더니

0개월 27일

모유수유를 안했더니 온갖 곳에서 인위적인 요소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1. 수유텀과 수유량

모유는 1~2시간에 한 번씩 먹이는 반면, 분유는 소화에 시간이 더 걸려서 3~4시간에 한 번씩 양을 재서 먹인다. 모유는 아이가 알아서 먹지만 (물론 먹다가 잠든다), 분유는 먹는 양과 텀을 어른이 잘 재어주어야 한다. 젖병은 조금만 빨아도 콸콸 나오므로 아이가 쉽게 과식할 수 있고 먹는 양을 스스로 조절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2. 분유

모유는 영양성분도 아기에게 최적화되어 있는데 심지어 공짜다. 반면에 분유는 다 먹어갈 때 쯤 새로 구매해야 하고, 어떤 제품을 살 지 조사도 엄청 해야 한다. 

3. 젖병

젖병을 비롯해서 분유포트 등등 설거지할 거리가 엄청 생긴다. 다음 수유 전까지 여분의 젖병이 있도록 늘 관리해줘야 한다. 특히 신생아 때는 열탕소독까지 해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 먹일 때도 옷만 걷어올리면 되는 모유와는 달리, 분유는 뜨거운 물을 끓이고 분유를 태워서 젖병에 잘 녹여주어야 하므로 시간이 더 걸린다. 

4. 빨기욕구

모유는 턱 관절과 혀를 이용해가며 힘차게 빨아먹어야 하는데, 젖병은 그냥 콸콸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막아가며’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젖병으로 분유를 먹으면 빨기욕구가 덜 충족되고, 공갈젖꼭지로 부족한 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들었다. (틀릴 수도 있지만…)

5. 교감

모유는 이러나 저러나 아이를 오랜 시간 끌어안고 먹여야 한다. 반면에 분유는 누구든 젖병을 입에 들이대면 5분 만에 먹여줄 수 있다. 그만큼 애착형성을 위해서는 분유를 먹을 때 아이에게 의식적으로 눈맞춤도 해주고 말을 걸어주며 먹여야 한다고 한다. 


예전에 바르셀로나에 놀러 갔을 때였나, 그 곳 식당에서 어떤 여성이 지인들이랑 밥을 먹다가 앞섶을 풀어헤치고 아이에게 모유를 먹여주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정말 멋져 보였다. 인위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이, 이렇게 당당하게 모유로 아이를 키우다니!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아서 나도 원래는 모유수유를 하려고 했는데, 이게 막상 보니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엄마 젖을 빠는 것은 본능이라더니, 아이는 젖을 잘 물지도 못하고, 한 번 물더라도 3분도 안 되어서 잠에 빠져들기 때문에 깨워가며 먹여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를 30분 동안 계속 해야 한다. 

그마저도 나는 회음부가 너무 부어서, 조리원 있을 때 ‘앉아서’ 수유를 할 수가 없었다. 밥도 서서 먹고……. 서서 할 방법을 찾다가 이건 너무 아이에게 위험하겠다 싶어서, 무릎 꿇고 침대에 수유쿠션을 얹은 채 앞으로 기대어 모유수유를 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조리원 직원분들은 이렇게 얘기하셨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이 에피소드를 꼭 알려주세요. 엄마가 널 지극정성으로 키웠다고.”


산부인과에서도 조리원에서도 수유콜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럴수록 아이는 젖병에 길들여졌다. 

그 결과 지금은 유두혼동이 심하게 와서 젖을 물리는 것부터가 난관이라 아이와 늘 씨름을 해야 했다. 30분이면 될 수유가 나는 그보다 한참 걸렸고, 심지어 한 손으로는 유두보호기 같은 도구를 부여잡고 있어야 해서 더 어려웠다. 

24시간 모자동실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고, 출산 전에 기저귀 가는 법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산전교육을 잘 받아두고, 신생아실에 아기를 떼어 놓는 산후조리원 대신 집에서 조리를 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좀 달랐을까? 

과거가 어떠했든 지금은 아이를 분유 위주로 키우고 있고, 아마 일주일 정도면 젖이 말라서 자연스럽게 단유가 될 것 같다. 가슴에 패드를 붙이지 않았을 때 잠옷에 모유가 묻는 적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모유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유수유를 하지 못해서 생기는 인위적인 요소들도 정말 내 취향과는 한참 다르고…….


‘과거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지만, 그럴수록 후회만 남았다. 차라리 이렇게 된 것, 분유수유의 장점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해야지 싶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짧아진 수유시간으로 생긴 여유 시간에 더 푹 쉬면서 나 자신의 시간을 더 가진다거나, 때로는 수유를 남편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외출로 산후우울증을 예방(치료?)한다거나.

앞으로는 아이를 키우면서 좀 더 성실하고 현명하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리 알아봐서 대비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준비를 하고, 그게 안 되면 그때그때 잘 판단해 움직일 수 있는 결단력을 갖춰야지. 

 * 사진출처 : Unsplash의 Lucy Wolski

매거진의 이전글 대충 살고 싶은 신생아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