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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Apr 29. 2024

안녕, 나의 신생아

0개월 29일

밤에 아이가 또 울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다. 아이가 왜 우는지, 조리원에서 집에 온 직후에는 정말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배고픈가? 기저귀? 아픈가? 잠투정?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했다. 3시간 텀으로 밥을 달라곤 했으니까, 새벽 3시 반인 지금은 배고파서 우는 것이겠지. 


수유를 한 다음, 남편이 똥기저귀를 갈아주고 조금 얼러 주다가 침대에 눕혔다. 


“조금 더 일으켜 세워주다가 눕혀야 안 게울 것 같은데.”

“그치만 내일 출근하려면 이젠 정말 자야 할 것 같아…….”

“내가 들고 있을게.”

“고마워요.”


아이를 건네받아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팔꿈치 안쪽에 아이 목을 대어서 고개를 받쳐주고, 오른손으로는 엉덩이를 토닥여주었다. 


엉덩이 씻겨준다고 엄청 울어대던 아이가 이제는 잠들어 있었다. 입이 ‘오~’ 하는 듯이 모여 있어서 귀여웠다. 왜 사람들이 아기 자는 모습을 두고 ‘새근새근 잔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숨소리가 새액, 새액, 하고 작게 들려왔다. 작은 입, 작은 눈, 작은 콧구멍. 




3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이는 벌써 큰 것 같았다. 


처음 산부인과에서 출산하고 받아든 아이는 정말 작고 하얬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표정으로 눈을 천천히 이리저리 굴리던 표정이 기억났다. 조리원에서도 아이는 작았다. ‘태어난지 D+003’이라는 팻말을 아기침대에 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 때에 비해서 지금은 머리숱도 더 많아지고, 이목구비도 커진 것 같고, 벌써 태열 같은 것도 올라왔다. 태어났을 때 3.33kg였는데 지금은 4.4kg 남짓하니까 자기 딴에는 30%나 성장한 셈이다. 




보통 만 1개월을 채우지 못한 시절을 신생아 시기라고 하던데. 나는 ‘앗, 신생아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신생아 시기가 훌쩍 지나간 듯 한 기분이었다.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에 나오는 ‘신생아’ 챕터도 이제 하루이틀 후면 무용지물이 되겠구나, 싶어졌다. 


임신 중에, 혹은 임신하기 전에, 아기 돌보는 봉사활동이라도 종종 나갈 걸 그랬다는 후회가 몇 번이고 들곤 했다. 아이를 씻기는 것은 물론이고 안아 올리거나 옷 입히는 것까지 하나하나 다 서툰 채로 신생아 시절이 지나가버린 것 같았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서툰 손길을 받게 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조산기 때문에 누워서 지내던 임신 기간에 육아 서적들이라도 읽을 걸 그랬다는 후회도 많이 들었다. 유명한 책들 많은데, 왜 열심히 찾아 읽지를 않았을까. 아니면 유튜브에서 산전교육 영상들, 하다못해 육아 브이로그라도 많이 봐둘걸. 


미리 공부했다면 아이를 대할 때 조금은 덜 당황했지 않았을까? 모르는 채로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쉬웠다. 공갈 젖꼭지를 물리면 괜히 안 좋을 것 같아서 우는 아이를 제대로 달래주지 못했다. 모유수유나 조리원 시스템 같은 것도 제대로 몰라서 중요한 시기가 어영부영 지나간 듯 아쉬웠다. 캥거루 케어도 한 번도 못 해 줬고.




“선생님께서 케어해주실 때는 후닥닥 잘 해주시는데, 제가 할 때는 모든 게 서툰 것 같아요.”

“아휴, 산모님이랑 똑같으면 우리가 전문가인 이유가 없지. 다 똑같아요. 처음이니까 서툴지.”


처음에는 산후도우미 선생님께서 그저 위로하는(?) 차원에서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날수록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산모도 아닌데, 엄마도 아빠도 처음이니까 서툰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아기 돌보기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더라도 젖병 물리고 기저귀 가는 것 정도나 했겠지, 엄마 젖을 물려준다거나 통목욕을 시켜주는 일, 아이가 울 때 배가 고파서 그런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를 가늠하는 일 등은 여전히 어색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육아는 애초에 예행연습이 불가능하다는 게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공부든 회사 업무든, 지금까지 했던 일들은 예행연습과 계획을 위주로 해오곤 했다. 시험을 앞두고는 연습문제를 많이 풀고, 회사에서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조차 미리 이면지에 한 번 찍어보고 인주가 잘 묻어나오는지를 봤었다. 


하지만 육아는 미리 해 볼 수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기저귀를 갈아줄 대상이 생기고, 젖을 물려주며 합을 맞추는 것도 내 아기가 없이는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신생아 시기에는 그 시기에 맞는 케어를 해주는 데에도 여념이 없어서, 미래에 대비한 예행연습을 하기는 커녕 잠을 자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주되, 그 와중에 틈틈이 한두 달 후, 혹은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안고 새벽잠을 재우면서는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작은 코, 작은 입, 작은 눈. 이 조그만 이목구비에 익숙해지는 데에 한 달이 걸렸다. 


너무 작아서, 때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다른 종의 생명체 같다는 기분마저 들곤 했다. 이 정도 사이즈의 생명체라면, 내가 그 동안 알던 상식으로는 강아지나 고양이 정도가 전부였다. 때로는 아이가 내는 소리도 이상하고. 고양이는 ‘야옹’만 하는 줄 알았더니 실제로는 ‘껙, 삐약, 아오옭’ 하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아기는 ‘응애’ 뿐만이 아니라 ‘크헥, 푸르릉, 끄으응’ 같은 희한한 소리를 냈다.


후회는 하등 쓸모 없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래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병원에서 출산하자마자 매일 젖을 물려줘야지. 조리원은 조기 퇴소를 하든가 취소를 해서, 하루 빨리 집에 데려와 정성껏 돌봐줘야지. 기저귀 갈고 옷 입히는 것도 서툴게 하지 않고, 속싸개도 좀 더 시원한 것으로 해줘야지. 


하지만 여전히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남아 있는 선택지는 ‘앞으로 잘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라는 것 뿐이었다. 


신생아 시절에만 볼 수 있는 특유의 표정으로 아이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반쯤 벌린 입에서 작은 바람이 불어나왔다. 안아서 재워버릇하면 안 좋다고는 들었지만, 오늘은 신생아로 지내는 마지막 밤이니까. 그러니 이렇게 안아준 채로 잠을 재워주기로 하고 그대로 잠시 더 토닥여주었다. 


노란 수유등이 따뜻하고 조용했다.



 * 사진 출처: Unsplash의 Marcel Fa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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