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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May 02. 2024

잠과 시간과 육아

1개월 6일

아기가 태어났더니 친구가 이렇게 얘기해줬다. 


“육아는 잠과의 싸움이야.”


그 말을 듣고, 무조건 아기가 잘 때마다 잠을 자야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원래도 아무 데서나 잘 자는 편이었어서 왠지 좀 자신이 있었다. 택시, 지하철, 비행기, 마룻바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머리만 대면 잘 잤으니까. 


하지만 실전 육아는 만만치 않았다. 듣던 바와는 달리, 신생아는 2시간마다 깨는 존재가 아니었다. ‘밥 때문에’ 2~3시간마다 깨되, 중간중간 ‘그냥’ 깨는 존재였다! 


깨는 이유는 다양했다. ‘기저귀가 축축해요’, ‘더워요’, ‘엄마 뱃속이 아니잖아요’, ‘모로반사가 와서 살짝 깼는데 아무도 없어서 허전해요’, ‘게워낼 것 같아요’, ‘똥 쌌어요’, ‘똥 쌀 것 같아요!’, …….


아기가 잘 때 쪽잠을 보충한다는 계획은 너무도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아기는 어른처럼 30분씩 낮잠을 자지 않았다. 물론 1시간씩 잘 때도 있었지만, 3~5분을 넘기지 못할 때가 훨씬 많았다. 


게다가 그렇게 재우기 위해서 안거나 토닥이는 시간이 또 들었다. 당연하지만, 아기가 잠에 빠져드는 그 시간에 나는 꼼짝없이 깨어있어야 했다. (재워주는 사람이 자면 어떡해)


임신/출산/육아를 겪으면서 자주 들었던 생각이 이번에도 또 들었다. 


‘아무도 이런 얘기는 해 준 적이 없는데?’




육아 서적을 읽다가, 아기가 칭얼거려도 조금 내버려두라는 말을 발견했다. 


미국소아과협회(였던가?)에 의하면, 아기는 울지 않고 잠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울음은 입면의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라는 말이었다. 


어제는 ‘놔둬보자’라고 생각하고, 가수면상태의 아기를 아기침대에 눕힌 후 부엌으로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비명, 그러니까 울음이 아니라 정말로 “끼야악-!”하는 비명 소리가 들려서 남편이랑 후다닥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기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지리지게 울고 있었다. 그 좋아하는 쪽쪽이도 물지 않고 세차게 울었다. 안아 올려서 한참을 얼러주었더니 그제야 진정을 되찾았다. 배고픔도, 기저귀도, 트림도, 옷차림도, 그 무엇 하나 바꿔준 게 없는데 울음을 그치다니. 결국 ‘그냥’ 울었던 걸까?


원인을 알면 대책이 설 텐데, 이유가 오리무중이니 또 그런 비명을 지를까봐 초조할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야경증’이라고 해서 어린 아이가 자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깨는 질환이 있다는데, 4세 이후쯤부터 잘 생기고 청소년기가 되면 저절로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 아기는 생후 1개월인데다가 치료법조차 명확하지 않으니 아무 소용 없는 정보였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우리 아기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맘카페에는 비슷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소리지르면서 깨는 아기’라고 검색하면 관련된 질문글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댓글들을 보면 다들 공감(“우리 애 얘긴줄 알았네요ㅠㅠ”) 혹은 질문(“저희도 그러는데 왜 그러는 걸까요?”) 밖에는 없어서 역시나 도움이 안 됐다.


소아과 의사분들의 유튜브 채널이나 책을 보면, 아기 때의 문제들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라는 유형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다들 뾰족한 해결책 없이 그냥 문제의 시기들이 지나가버려서 해결된(?) 걸까? 그래서 댓글들도 시원찮고, 반면에 장성한 어른들은 딱히 문제의식 없이, 예컨대 ‘30대 남성인데 비명을 지르면서 깹니다’ 같은 문제를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는 걸까?




그러고 보면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육아에 전반적으로 해당되는 이야기 같다.


조리원에서는 아기 피부에 여드름이 한 두 개 생겼는데, 인터넷에 ‘신생아 여드름’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글이 수두룩하게 나올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 엄마 호르몬 때문에 생긴다고 하고,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진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때의 여드름은 수일 내로 사라졌다. 대신 요즘에는 태열이 다시 올라와서 문제지만. 


태어났을 때 아기들 심장에서 들리는 심잡음도 대체로 저절로 좋아진다고 하고, 고환에 물이 차는 음낭수종도 흔한 증상이지만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한다. 탯줄도 집게로 집어두고 물만 안 들어가게 잘 말려주면 몇 주 안으로 떨어진다고. 게워내는 일도 몇 개월 후면 자연히 사라진다, 배고파서 밤중에 깨는 일도 체중이 늘면서 자연히 사라진다……. 


뭐 죄다 ‘자연히’ 사라진대.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저 시간이 흘러서 좋아자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아이를 케어하는 일도 금방 효과를 보기 어려운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는 아이를 달랠 때는 시간을 들여서 안아다 얼러주어야 했다. 처음에는 ‘와, 얘가 과연 얼러질까?’ 싶을 정도로 거세게 울지만, 신기하게도 3~5분 이상 얼러주고 있으면 진정이 되었다. 


잠을 재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큰일이다, 절대 안 잘 것 같다’ 싶을 때도,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 새부턴가 아이는 밤낮을 살짝 구분하고 있었다. 낮에는 아직도 진짜 잠을 못 자고 칭얼대기 일쑤지만, 밤에는 수유를 하고 나면 그래도 곧잘 잤다. 언제쯤이면 밤낮을 구분할까 싶었기에 신기하게 느껴졌다. 


물론 수면은 아직까지 마스터하지 못한데다가, 어쩌면 아기 시절이 다 지나갈 때까지도 마스터하지 못할 것 같은 영역이기는 하다. ‘먹-놀-잠 (먹고-놀고-자고)’이 가장 이상적인 육아 패턴이라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성공적인 케이스가 되어버렸다. 잠들지를 못하니 놀다(&울다) 지쳐 잠들 수 밖에. 




육아는 어쩌면 긍정 마인드와 인내가 필수 덕목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루아침에, 혹은 한방에 좋아지는 방법은 없었다. 모유수유만 해도 그랬다. 처음에는 아예 젖을 물지도 못하고, 물더라도 자꾸 뱉어내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래도 유두보호기를 했더니 잘 물어서 한동안은 그걸로 연명했다. 그러다 며칠 전에는 ‘혹시?’ 하는 생각에 직접 물려봤더니 잘 물어서 직수에 성공했다. 


이제는 유두를 자근자근 씹는 버릇을 고치고, 수유 시작한 지 몇 초만에 잠드는 문제를 해결할 일만 남았다.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처럼 느껴져서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완분(완전분유수유)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든다. 


그래도 이 정도 발전한 게 어디냐 싶은 마음으로, 일주일만 한 번 해보자고 다짐했다. 혹시 또 모르지, 의외로 이번에도 시간이 약이 될 지도? 안 될 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어떤가. 




어쩌면, 작은 발전 하나하나에 희망을 걸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만 지속할 수 있는 게 육아가 아닐까?


누구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초보에서부터 시작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산모조차 “첫째 때 어떻게 했는지 다 까먹었어요”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소아과 의사나 무슨무슨 전문가, 혹은 남의 아기를 오랫동안 봐 줬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 아이 낳아서 24시간 키우는 일’은 전혀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초짜라고 한다. 


다행이었다. 그 전에는 아이 돌보기 봉사활동이라도 수시로 다니면서 신생아와 아기들에 익숙해졌어야 했나 하고 종종 후회했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제로에서 시작해야 한다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봉사활동을 했어도 똑같았겠네! 게다가 조산기 있는 임산부가 어떻게 하루 4시간 이상을 아이 돌보기에 쓰고 있었겠어. 애초에 부질없는 후회였다. 


지금 하는 데에서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하면 될 일이다. 기저귀도 갈 줄 몰랐는데, 이제 옷을 갈아입히거나 세수와 목욕도 시켜줄 수 있으니까 이 정도만 해도 장족의 발전 아닐까? 이렇게 하나씩 마스터해가면 되지. 서툴어서 걱정이라면, 최소 열 번 정도 반복해서 해 보면 능숙해지겠지.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한도끝도 없고,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육아라는 말도 있었다. 


하나씩 차근차근 익혀가고 배워가야지. 완벽하게는 못하더라도, 얼렁뚱땅이라도 해낼 수 있으면 그럭저럭 할 수 있는 게 육아가 아닐까?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Jon T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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