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행위 그 사이에서
집 근처에 대형 카페가 있어서
같이 일하는 선생님과 그림그리고 놀러 갔다.
오일파스텔을 챙겨가서 그런지
카페에 나오기 전에
그림 하나 간단히라도 완성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빵은 처음 그려서 실패하고,
먹고 싶은 자몽케이크를 재밌게 그렸다.
카페를 나서는 길에 문득
‘즐거웠으면 된 거야. 꼭 무언가를 안해도 돼.’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목표 지향적 사람이라서
현재의 즐거움이나 기쁨을 놓칠 때가 종종 있다.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항하기 위해
매일 나에게 해 주는 말이 있다.
“너는 존재만으로 귀하고, 멋진 사람이야.”
이 말을 스스로 하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몽글몽글한 느낌이 든다.
더 이상 내가 의무감으로 혹은
나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든다.
불안해서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싶다.
존재에 집중하는 아침의 시간과
그리고 내 일상 가운데 빈 틈의 시간 속에서
나는 힘을 뺄 수 있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계획한 것을 다 끝내지 못해도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음에는 조금 줄여볼까하면서 격려해준다.
일상에서 틈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우선순위이다.
놓칠 때도 있지만, 그 다음날은 다르게 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일상을 사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제일 고난이도는
집에서 아무 음악도 틀지 않고, 멍 때리는
침묵의 시간이다.
평일에는 주말보다 할 일들이 있는 편이라
어쩌면 조금 바보같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누워있어본다.
그러면 내 마음 속에 남아있던 조급함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처럼
조급할수록 오히려 아무것도 안하기로 작정하면
사실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던 것이 별 것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물론 집안일이나 그 때 그 때 해야할 일들은 평일에 다 끝내둔다.)
이런 고독의 시간들을 연습해나갈 때,
더 이상 나를 행위로 판단하지 않고,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아닐까.
아직 나 또한 연습 중이라
다 알 수는 없지만,
알아지는 만큼, 한 걸음씩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