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빨리 앞으로 가야 하는데! 1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겠냐. 망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한 무리의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마라톤의 출발 신호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초조하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구른다.
모든 사람들이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비켜 달라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얄미웠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더욱 비켜주기 싫은 심술이 생기는 편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 사람들을 추월해 나갔다.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월했고 슬슬 '이대로 괜찮을까...' 하고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더 빨리 가고 싶은 욕심이 났지만 지쳐서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리면 아무 소용없기 때문에 '나의 몸 상태'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 몸이 어느 정도 달아올랐을까? 지금 내 컨디션에 적절한 속도는 뭘까?" 계속 몸 상태를 살피고 거기에 맞는 속도로 맞춰나갔다.
그렇게 절반을 조금 넘게 달렸을까. 나를 앞질렀던 사람들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이 보았다. 나는 여유롭게 그들을 추월했다. 순간 알아차렸다. "처음에 남들보다 느려도 나에게만 집중하면 되는구나. 결국 내 속도에 맞게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것이 중요하구나." 천천히 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일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결과물을 더 빨리 만들어야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주말에 일을 조금 더 하면 더 빨리 결과물을 완성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무리했다가 번아웃이 오면 지하까지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오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들기 때문에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일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잠깐 내려놓고 퇴근 후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야 내일 또다시 천천히 달릴 수 있으니까.
마라톤과 인생이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마라톤 1시간이지만 인생은 수십 년을 달려야 한다. 마라톤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만 인생은 전혀 예측이 안된다. 그 예측할 수 없는 까마득함 때문에 더욱 쉽게 불안함에 휩쓸리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라톤에서 배운 것을 믿고 가는 것 밖에 없다. 내 몸을 잘 살피고 적절한 속도로 달려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