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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처럼 스며든 커피

by 글은

커피에서 초콜릿 향이 났다.

단맛이 혀에 스며들었고, 그 여운은 스위스 초콜릿처럼 오래 남았다.

그 순간, 어제 먹었던 초콜릿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호주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취향을 듬뿍 담은 원두 한 봉지를 들고 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며 찾아갔던 카페,

산미가 지나치게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입안에 부드럽게 단맛이 머무는 그 감각에 이끌려 냉큼 구입했다.


그 공간은 조금 어두웠고, 차분했지만 생기가 있었다.

입구 정면에는 시그니처 원두가 진열돼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네 명의 바리스타가 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반대편엔 층계 모양의 의자에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 앉아 있었다.

좁은 공간 속에서 모두가 자기 역할을 조용히 해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스키틀레인의 커피는,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지는 정교한 브루잉으로 추출된다.

첫 모금에서 느껴진 건 신맛이었다.

만다린처럼 선명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그 산뜻한 느낌이 입안을 지나자

초콜릿 같은 단맛이 은근하게 따라왔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구입한

프랑스와 스위스 초콜릿이 문득 떠올랐다.


프랑스 초콜릿은 시작부터 강렬한 단맛을 퍼뜨렸다.

입에 넣자마자 혀의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

버터의 풍미가 끝까지 입안에 남아 있었다.


반면 스위스 초콜릿은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엔 질감만 느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단맛이 서서히 퍼졌다.

그리고 다 먹은 뒤엔

깔끔하고 은은한 카카오향이 조용히 머물렀다.


오늘 마신 커피의 단맛은 스위스 쪽에 가까웠다.

입에 머금었을 때 커피의 질감과 향이 먼저 퍼지고,

그 뒤를 따라 단맛이 천천히 찾아왔다.

버터처럼 눅진하지도 않고,

설탕처럼 뚜렷하지도 않았지만,

입안에 부드럽게 남았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단맛이란 설탕처럼 빽빽한 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스며들 듯 머무는 단맛도 있다는 걸

이 커피가 처음 알려줬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단맛, 산미, 질감의 미묘한 차이를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같은 단맛이라도

어떻게 시작되고, 얼마나 머무르며, 어떻게 사라지는지가 중요했다.


이 원두는

내가 몰랐던 ‘나의 취향의 한 조각’을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다시금 알게 되었다.

커피 한 잔은 기호품이 아니라,

취향을 발견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마치 어제 먹은 초콜릿처럼,

오늘 마신 커피처럼.


앞으로도 나는

이런 단맛들을, 이런 순간들을

조용히, 천천히 쌓아갈 것이다.

나만의 취향을 더 깊이 탐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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