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수의 차이, 한 잔의 성격

내 취향을 찾아가는 레시피 2

by 글은

분쇄도는 그대로 두고, 푸어량은 15배.

블루밍은 평소의 두 배로, 30초로 분배했다.

푸어차수는 (푸어량 - 블루밍) / n으로 나눴다.


그 결과, 묵직한 느낌이 확실히 줄었다.

대신 에티오피아 특유의 산미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코스타리카 원두처럼 후미에 초콜릿의 농도가 남는 대신, 꽃향기와 복숭아 향이 잔잔히 이어졌다.


5차수로 내렸을 때보다 농도는 한결 가벼워졌다.

입안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원두의 개성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4차수가 이 원두에 가장 알맞은 농도처럼 느껴졌다.


한 모금이 입안에서 천천히 풀리며 리듬을 만든다.

첫 번째 산미는 날카롭지 않게 살짝 스치고,

그 뒤를 따라 단맛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끝맛은 마치 긴 문장의 마침표처럼,

입안 어딘가에 남은 향으로 문장을 닫는다.


향은 유리잔의 벽을 타고 천천히 올라온다.

그 순간마다 다른 온도의 꽃향기가 흩어진다.

약간의 복숭아, 아주 미세한 재스민.

그 향들이 얇은 층처럼 쌓이며 한 잔의 기억을 만든다.


커피의 쓴맛은 한참 뒤에 올라왔다.

마신 뒤 꽤시간이 지나서야 바디감이 고요히 밀려왔다.

마치 한 모금에서 느낀 테이스팅 노트를 모두 정리한 뒤,

다음 모금을 준비하라는 신호처럼.


한 차수를 줄이는 게 이토록 뚜렷한 차이를 낼 줄은 몰랐다.작은 변화가 맛의 균형을 다시 세웠다.

커피가 참, 정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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