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균형을 찾아서

내 취향을 찾아가는 레시피 1

by 글은

정인성 바리스타의 2:4:3 레시피로 아이스와 핫을 동시에 내려 마시다 보니, 점점 더 진한 커피가 당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가수를 하면 꽤 연해지는 듯해, 새로운 레시피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기본적인 레시피부터 다시 짚어보기로 했다.


뜸들이기 30g 30초.

이후 50g씩 다섯 차례를 나누어 총 280g을 추출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기존보다 바디감이 살아났고, 후미에 카라멜과 초콜릿이 맴돌던 예전과 달리, 이번엔 쓴맛과 진한 맛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원두는 에티오피아 싱글 오리진 HALO Ethiopia. 원래는 꽃향기, 복숭아, 리치의 상큼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곤 했는데, 이번에는 깊이 눌러앉은 맛이 그 화사함을 붙들며 균형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커피가 훨씬 편안하게 다가왔고, 카페에서 마시는 대중적인 커피와도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같은 원두라도 레시피에 따라 맛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추출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디감이 깊어진다는 것.


첫 180g은 단맛과 화사함을 이끌어내고, 그 뒤부터는 무게를 가진 맛이 더해진다.

예전에 영상으로만 보던 테츠 카츠야 바리스타의 4:6 레시피**도 이와 맞닿아 있었다. 1인분 300g 기준으로 첫 120g이 맛을 결정한다는 것. 1차 푸어는 산미, 2차 푸어는 단맛을 좌우하며, 이후는 차수를 늘릴수록 농도가 진해진다.


내 레시피로 환산하면, 첫 시도는 180g을 맛으로 잡고 120g을 가수로 채웠다. 이번에는 맛을 130g까지만 잡고, 남은 물 150g을 나누어 푸어했다. 테츠 카츠야는 120g을 맛으로 두고, 180g을 나눠 푸어한 셈이다. 세 레시피의 중간 지점인 140g이 아마 맛을 뽑아내는 기준선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는 농도를 조절하는 단계였다.


정리해보자.

뜸들이기를 포함해 첫 140g이 맛을 좌우하고, 나머지는 농도를 결정한다.


5차 추출로 나누니 에티오피아 원두도 잔향을 오래 끌어당기는 맛이 꽤 높아졌다.

다음에는 차수를 줄여 진한 맛을 덜어보고 싶다.

남은 물을 뜸 들이기에 더해 쓴다면 또 어떤 맛이 날까.


다음 실험은 네 차수.

40 105 170 235 300g, 총 2분 40초에서 3분.

뜸은 30초.

또 한 번 새로운 맛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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