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
나는 2017년 말 즈음 처음으로 웹소설을 접했다. 그전까지 나는 약 10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다. 업종과 규모는 각양각색이다. 50명 이내의 브랜드 컨설팅 회사도 있었고, 1,000명이 넘는 게임 회사와 대기업 계열 IT 기업도 있었다.
직장 생활 중 꾸준히 글쓰기를 하다가 친구와 인문학 서적을 한 권 냈고, 짧은 전자책도 여러 권 썼다. 대학 때 전공도 국문학이었다. 예전부터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당시 나는 직장생활에 권태를 넘어 슬슬 환멸에 빠져들고 있었다. 내가 없어져도 상관없고, 내가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오직 나여야 하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결국 조건보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연봉과 복지 좋은 대기업을 퇴사하고, 연봉을 반이나 깎아 신생 잡지사에 취직했다. 1년 정도 매달 잡지 한 권을 내야 하는 긴박한 환경에서 글을 썼다.
그런데 회사 사정이 기울기 시작했다. 글을 쓰며 살겠다고 멀쩡하게 잘 다니던 대기업도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아예 직장이 없어져 버렸다. 현실은 냉정하고, 내 선택의 대가는 가차 없었다.
다른 회사를 알아볼까 어쩔까 이것저것 생각해 봤지만 더이상 직장 생활은 그만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다녔던 기업이 결코 나쁜 곳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일반적인 기업보다 분위기도 좋은 편이고,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회사에서 일할 때면 늘 답답함을 느꼈다. 이제 와서 어느 회사를 다닌들 달라질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예전부터 막연하게 상상만 해오던 일. 소설을 본격적으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아니 문제가 많았다.
나는 이미 종이책을 한 번 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전업 작가가 책만으로 밥벌이하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통상 종이책을 냈을 때 작가가 받는 인세는 책값의 10%다. 책의 콘텐츠는 작가가 책임지고 쓰지만, 실질적으로 책에서 작가의 몫으로 인정되는 지분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책이라도 많이 팔리면 다행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단행본 1,000권을 팔기도 쉽지 않다. 가령 1만 5천원짜리 책을 1,000권 판다고 해도 작가가 버는 돈은 150만원에 불과하다. 당연히 세금도 떼야 한다. 만약 종이책이 매달 1,000권 이상 술술 팔려나간다면 쉽진 않아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1년에 1,000권도 팔리지 않는 책이 훨씬 더 많다. 내가 친구와 낸 책도 아직 1쇄를 다 팔지 못했다.
그나마 이것도 내가 등단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 소설을 출간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 문학 시스템에서 소설을 내려면 각종 신문사와 문예지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에서 뽑히거나, 아니면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개최하는 소설상을 수상해야 한다. 등단 없이 소설을 내는 것은 희귀한 케이스다.
등단이 어디 쉬운가. 여러 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오직 등단을 위해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심사위원 성향까지 파악해 가며 글을 쓰고 등단을 준비한다. 그런데도 대다수가 실패한다.
그런데 내가 등단할 정도의 퀄리티를 갖춘 소설을 쓰려면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또 설령 운 좋게 등단해도 내가 과연 소설로 한 달에 2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을까?
아니, 절대로 무리였다. 내가 한국 문단을 뒤흔들 대형 신인 작가가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만약 그 정도의 천재였다면 이미 그 전에 뭘해도 했을 것이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건 좋지만,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할 마음은 없었다.
그때 같이 독서 모임을 하는 후배가 ‘문피아’를 알려주었다. 웹소설이라는 게 있는데 생각보다 작가 수익이 많다면서 한번 살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2017년 말, 나는 호기심에 처음 문피아에 접속했다. 조금 살펴보니 구조가 독특했다. 권 단위로 판매하는 종이책/전자책과 달리 웹소설은 ‘회’ 단위로 팔았다. 1회 분량은 5,000자 이상이고, 25회면 한 권 분량이 된다. 일일 연재 방식으로 작가가 매일 소설을 1회 이상을 올리면 독자가 회차별로 구매해서 읽는 방식이었다.
정말 이렇게 해서 돈을 번다고? 나는 의구심을 품은 채 문피아를 훑어봤다. 의구심은 점점 짙어졌다. 기존 출판이나 소설에 대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일단 제목부터 적응할 수 없었다. <OOO이 힘을 숨김>, <XX를 너무 잘함> 같은 제목에 나는 눈만 껌뻑였다. 같은 웹소설이라도 <달빛 조각사> 같은 작품은 제목에 은유적인 뉘앙스도 있고 뭔가 멋져 보이는데 이건 뭐지? 힘을 왜 숨겨? 판타지 소설 주인공이 자기 특기를 당연히 잘하겠지. 근데 이게 제목이라고? 솔직히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용은 또 어떻고? 베스트 순위에 있는 소설 몇 편을 첫 부분만 조금 읽어봤는데 제목을 볼 때보다 더 어이가 없었다. 내가 그때까지 알고 있던 소설이란 일단 문장이 아름다워야 했다. 옛 성현들부터 유명한 소설가들이란 죄다 명문장가들 아닌가. 힘이 넘치든지, 감성이 충만하던지, 생동감이 넘치든지, 정갈한 맛이 있던지. 문체는 작가가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첫 번째 수단인데.
그런데 웹소설은 문장에서 기교는 둘째 치고 성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휙휙 읽히기는 하는데 이게 지금 문장이 제대로 된 건가 싶은 것도 많았다. 소설이면 으레 있기 마련인 멋들어진 배경 묘사 같은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히려 군데군데 오타가 눈에 띄었다. 읽으면서 ‘이게 소설이라고?’ 하는 의문과 ‘이 정도는 나도 금방 쓰겠는데?’ 라는 자신감이 동시에 들었다.
분명 소설의 형식은 띄고 있지만, 어딘가 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조악해 보이는 작품투성이었다. 그런데도 회당 조회수가 몇 만이 넘는 작품이 수두룩했다. 나는 보면서 계속 눈을 의심했다. 정말 이런 작품을 몇만 명씩 읽는다고?
그러다 당시 가장 핫한 작품인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소설을 봤다. 주인공은 재벌 기업에서 직원으로 일하지만 사실상 재벌가의 머슴이나 다름없다. 그러다 비리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는데, 깨어나 보니 바로 그 재벌가의 막내 아들집에 환생한다. 주인공은 이미 알고 있는 재벌 가문의 뒤엉킨 관계와 각종 경제 지식을 총동원해 재산을 불리고 재벌가를 통째로 삼키려 한다. 수많은 재벌물의 기초를 만든 작품이고, 현재 JTBC에서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웹소설은 보통 적으면 150회, 많으면 1,000회 이상도 연재한다. 그리고 보통 25회 정도를 아무나 볼 수 있게 무료로 공개한다. 독자를 최대한 끌어모으기 위해서다. 그리고 유료화된 회차부터는 회당 100원씩 돈을 내고 읽는 시스템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유료화’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사라지는 작품이 무수히 많다. 문피아는 모든 무료 회차의 조회수는 물론, 유료 회차의 구매수까지 모두 공개한다.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당시 <재벌집 막내아들>은 아직 완결 전이었다. 252회까지 연재하고 있었고(완결은 326회), 회차마다 구매수가 2만에서 3만을 오갔다. 회당 100원이니까 구매수가 3만이면, 그 회의 매출액이 무려 300만원이다! 웹소설은 매일매일 올라오니 대충 하루에 300만원씩 벌린다는 얘기고, 한 달이면 무려 9,000만원이라는 소리다!
이름에 ‘웹’이 붙어 있듯이 태생부터 인터넷 기반인 웹소설은 매출에서 작가가 가져가는 비율도 종이책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높다. 정확한 비율은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못해도 작품 매출의 절반 정도는 작가 몫이다. 그렇게 가정해도 한 달에 작가가 버는 돈이 4,500만원이 넘는다. (실제 작가가 버는 돈은 이보다 많았을 것이다.)
나는 얼른 엑셀을 열었다. 그리고 <재벌집 막내아들>의 회차별 구매수를 모두 더해 보았다. 나는 처음 문피아에 접속했을 때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았다. 252회까지 구매수를 모두 더하고 100원을 곱하니, 무려 6억 8천만원이 넘었다.
이것도 오직 문피아에서의 매출만 그 정도였다. 웹소설 플랫폼은 문피아 외에도 많고, 연재 플랫폼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 정도 히트작이면 다른 곳에서도 엄청나게 팔리기 마련이다. 다른 곳은 문피아처럼 구매수를 오픈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매출 규모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종이책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돈이 모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제목부터 이상하고, 내용도 정말 소설인지 뭔지 모르겠고, 일일 연재에 회당 고작 100원씩 받는다고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던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란 말인가.
물론 <재벌집 막내아들>은 문피아는 물론, 전체 웹소설에서 따져봐도 0.1% 에 속하는 최상위 작품이다. 그래도 매일매일 300만원 넘게 버는 소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소설 한 권으로 1년에 300만원도 벌지 못하는 작가가 수두록한 세상인데.
딱히 등단해서 한국 문단에서 이름을 날리겠다는 명예로운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던 나에게, 갑자기 글만 써도 돈을 벌 수 있는 신대륙이자, 신세계가 열렸다. 그때부터 나는 문피아와 웹소설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이없다며 혀를 차더니, 돈을 보니까 금세 마음이 바뀌다니. 너무 속물 같은가? 그렇다. 나는 처음에 오직 돈을 보고 웹소설에 끌렸다. 그리고 돈은 여전히 웹소설을 쓰는 이유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자고로 직업이라면, 그것도 전업이라면, 하루 8시간 이상을 투자했을 때 최소한의 밥벌이는 가능해야 하지 않나. 글쓰기를 비롯한 많은 예술 계열 직업이 이를 충족하지 못해, 수많은 예술인이 배고픔에 허덕인다.
글을 써서 최소한의 밥벌이가 가능하고 운이 좋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미국에 골드러시가 있었듯이, 한국에서 글 좀 쓴다는 사람이 웹소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웹소설에 진지하게 도전해 보려던 차에, 2018년 문피아에서 총상금 3억 5천만원을 걸고 공모전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웹소설 쓰기에 돌입했다. 비록 소설을 쓴 경험은 거의 없지만 ‘웹소설이라면’ 나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나의 첫 도전은 (내 목적을 생각하면) 처참하게 실패했다.
나는 웹소설이 문학의 신세계(新世界)인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웹소설은 결코 신세계가 아니었다. 그곳은 같은 문자만 공유할 뿐, 전혀 다른 문화와 생태계로 움직이는 이세계(異世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