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공모전의 독특한 방식
여기서 잠깐 문피아 웹소설 공모전 형식을 살펴보고 넘어가자.
보통 우리가 아는 소설 공모전은 소설 한 편을 완성해서 주최측에 보낸다.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소설 파일을 올리거나 혹은 폰트 크기, 줄 간격 등 정해진 서식에 맞춰 프린트해서 우편으로 보낸다. 그러면 주최측이 원고를 심사위원들에게 나눠주고, 심사위원들이 추린 후보작 중에서 토론을 거친 당선작을 선정한다.
하지만 웹소설은 전혀 다르다. 웹소설 공모전은 웹소설 형식에 맞춰 정해진 기간 동안 연재를 한다. 2018년 문피아 공모전을 예를 들면 40일 동안 최소 30회 이상 연재, 매회 띄어쓰기 포함 3천자 이상, 총 15만자 이상을 써야 한다. 이 조건이 최소한의 커트라인이다. 웹소설 플랫폼마다 기간이나 회차, 글자수 등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대략적인 형식은 비슷하다.
웹소설이 일일 연재 시스템인 만큼, 웹소설 공모전도 자연스럽게 웹소설 시스템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때 연재 주기와 시간은 작가가 정한다. 작가는 각자 자신의 리듬과 독자가 주로 몰리는 시간대를 고려해 연재 시간을 정한다. 독자는 마음에 드는 소설이 있으면 업로드 시간에 접속해 소설을 읽는다.
쉽게 간과하지만 웹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일 연재로 인해 생겨난 원칙으로, 웹소설은 독자가 내일 다음 회를 읽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웹소설의 모든 것이 이 원칙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웹소설의 모든 문법은 그래서 어떻게 독자를 내일도 소설을 읽게 만들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소설은 사건이 쉴 새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어떤 소설은 독특한 매력으로 독자를 잡아끄는 캐릭터를 내세우고, 또 어떤 소설은 뭔가 일어날만 하면 이야기를 뚝 끊어서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작가마다, 장르마다 내세우는 무기는 달라도 어쨌든 노리는 목표는 똑같다.
더 많은 독자가, 내일도 소설을 보게 하는 것.
웹소설(특히 남성향의 경우)은 적게는 150~200회에서, 많으면 1~2,000회도 넘게 연재한다. 만약 작가가 주7일, 매일매일 연재한다고 가정하고, 200회 완결이면 작가는 200일에 걸쳐 연재하는 셈이다. 1회를 읽은 독자가 200일 동안 꾸준히 따라와 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초대형 작가조차 그러기는 쉽지 않다. 독자가 어느 정도 모였다 하더라도 작품이 유료가 되는 순간 우수수 떨어져 나가고, 그나마도 연재를 거듭할수록 계속해서 줄어든다.
그래서 웹소설은 재미는 물론이고, 몇백 회에 걸쳐 연재할 동안 퀄리티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면서 성실하게 연재할 수 있는가도 굉장히 중요하다. 문피아 공모전이 한 달 넘게 진행하면서 30회 분량을 한 번에 받지 않고 ‘연재’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피아가 공모전에 수억원이 넘는 돈을 상금으로 쓰는 이유는, 공모전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고 좋은 작가를 확보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작품들을 유료화하고, 최대한 오랜 기간 연재하며 무사히 완결까지 끌고 가서 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래서 공모전 기간은 정해져 있지만, 공모전이 끝났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공모전 기간이 끝나도 연재는 계속되어야 한다. 수상을 노리는 조회수 30위권 위의 작품이라면 무조건이고, 상을 탈 가능성은 없어 보여도 유료화를 할 생각이거나, 아니면 기왕 시작한 소설이니 완결까지 가겠다고 다짐한 작가들은 꾸준히 연재를 진행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나는 소설 구상에 돌입했다. 다행히 장르는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무조건 서양 판타지를 쓴다고 생각했으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 좋아하고,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보며 입을 떡 벌렸고,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로도스도 전기>, <룬의 아이들 - 윈터러> 같은 작품을 좋아했으니까. 기본적으로 웹소설은 장르 소설이고, 장르 소설을 쓴다면 당연히 서양 판타지라고 생각했다.
서양 판타지에 드래곤이 빠질 수는 없는 법. 나는 예전에 구상한 적이 있는 드래곤마다 이마에 보석이 박혀 있고, 이 보석을 통해 마법을 쓰는 드래곤이 존재하는 세상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써 볼 생각이었다.
전체적인 서사는 고래잡이 소설 <모비 딕>에서 가져와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는 드래곤을 잡아 돈을 버는 중세의 용병대를 구성했다. 여기에 <모비 딕>의 광기 어린 에이햅 선장을 모티프로 신분 상승 욕구에 불타는 용병단 단장 ‘데이몬’을 만들고, 최고의 실력을 갖췄지만 상처 입은 영혼인 부단장 ‘레오하트’를 옆에 두었다. 두 사람이 이끄는 용병대가 세계관 최강의 드래곤 ‘드라켄’을 잡기 위해 온 제국을 떠도는 이야기로 줄거리를 정했다. 제목은 목표가 되는 드래곤을 따라 <드라켄>으로 정했다. 드라켄은 서양의 대표적인 환상동물 드래곤과 크라켄을 합성한 이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어디까지나 설정이니까. 단장, 혹은 부단장을 중심으로 드라켄을 잡는 과정에서 여러 서브플롯을 주면서 시원하게 드래곤들 때려잡고, 주인공을 방해하는 정치적 술수를 돌파하며 마침내 드라켄을 잡으면서 시원하게 마무리했다면 아마 훨씬 성적(조회수)도 좋았을 것이다. 제목도 <드래곤 때려잡는 최강 용병대> 같은 식으로 내용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짓고.
하지만 나는 그때 웹소설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까막눈에 불과했다. 당시 내 웹소설에 대한 인식 수준은 종이책을 5천자 정도로 잘라서 매일매일 연재하면 그게 웹소설 되는 거 아니야? 딱 이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웹’소설은 그냥 인터넷에서 연재하니까 웹소설이라고 생각하는 1차원적 인식이었다. 웹소설이 기존의 종이책 소설과 호흡, 문법, 관점, 스토리텔링 등 소설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뭔가 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돈을 벌고 싶어 웹소설에 도전은 하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좋아하던 종이책의 세계관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비록 웹소설이 어때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진지하게 소설 쓰기에 몰두했다. 마침 나에게 문피아를 알려 준 후배도 소설을 쓰고 있어서(웹소설은 아니었다), 우리는 주말마다 만나 서로의 소설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나는 월화수목금 5일 동안 5회분의 소설을 쓰고, 주말에 피드백을 받아 소설을 고쳤다.
연재를 하는 도중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공모전이 시작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분량을 써놓고 싶었다. 이를 ‘비축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소설 첫머리가 잘 풀리지 않아서 몇 번을 고치느라 시간을 보냈고, 서양 중세에 관해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았다. 정확하진 않은데 공모전 시작 전까지 아마 10회 안팎 정도의 비축분을 써놨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8년 4월 9일 오전 10시.
드디어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피아 공모전에 내 소설을 등록하기 위해 접속했다. 그리고 곧바로 멘붕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