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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ybrush Feb 18. 2021

심해 2만리

3,000편이 넘는 소설 속에서 가라앉다

내가 문피아에 접속했을 때는 공모전이 시작하고 1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수백 개가 넘는 소설이 등록되어 있었다. 내가 올라온 소설을 빠르게 훑어보는 와중에도 새로운 소설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별도로 마련된 공모전 순위에서 최상위권은 이미 수백에서 수천에 달하는 조회수가 나오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전작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작가들도 많았다. 대부분의 소설 공모전이 그러하듯 문피아 공모전도 신인, 기성 구분이 없다. 억대 상금이 걸려있는 만큼 매년 기성 작가들도 많이 참여한다.


격투기로 따지면 체급 제한이 없는 링에서 햇병아리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 전부 모여서 베틀로얄을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그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장을 보자 과연 천둥벌거숭이인 내가 공모전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러면 공모전 상위권은 모두 기성 작가가 싹쓸이할 것 같지만 신기하게 그렇지도 않다. 매년 공모전 상위권에 기성 작가가 포함되긴 하지만, 늘 어디선가 이들을 물리치는 대형 신인이 꼭 나타난다. 물론 그들이 정말 신인인지, 아니면 기성 작가가 필명만 바꾼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앞이 캄캄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써놓은 비축분도 있는데. 나는 일단 공모전용 게시판을 열고 <드라켄> 3회를 올렸다. 필명 ‘Guybrush’는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PC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의 주인공 이름이다. 한글 ‘가이브러쉬’는 이미 누가 사용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영어로 했다.


처음에 3회를 올린 이유는 웹소설 작가 커뮤니티에서 처음에는 3회 이상 올리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시작하자마자 3회분의 비축분을 소모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1회 만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재미있다면 독자는 뒷내용을 읽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3회 정도를 한 번에 올리는 게 좋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공모전은 하루에 연재분을 5회까지만 올릴 수 있었다. 한 번에 여러 회차를 올리는 걸 ‘연참’이라고 부른다. 문피아 독자들은 쌓인 회차가 적으면 감질나다며 읽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서, 비축분이 많거나 글을 빨리 쓰는 작가는 연참을 자주하면 독자를 늘리는데 유리하다.


불리한 게임이지만 어쨌든 게임은 시작됐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어서 다음 이야기를 쓰면서 비축분을 늘리는 것이다. 최소한 비축분이 연재에 잡아먹히는 일은 없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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