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P 그리고 총 대신 펜을 든 날

질풍가도(疾風街道), 그 첫 번째 바람

by 문장담당자

"GOP 그리고 총 대신 펜을 든 날 - 눈 내리는 초소에서, 나는 나를 다시 배웠다"


군대는 '남자라면 한 번쯤 다녀오는 곳'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내게 군대는 '조직의 본질을 처음 목격한 장소'였다.

그리고 그 시간의 핵심에는 GOP라는 단어와 총 대신 펜을 손에 쥐게 된, 운명 같았던 한 사람의 선택이 있었다.


입대한 건, 학부 1년을 마치고 서였다.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사 수업을 들으며 매일같이 문학 작품을 읽고, 소설가나 교수의 꿈을 품고 있던 나에게 입영통지서는 다소 낯선 언어로 적힌 소설의 첫 장 같았다.
“병역판정검사 결과 귀하는 현역병 입영 대상자로…”
그 문장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나는 그 문장의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대했다.

훈련소를 마치고 배치받은 자대는 6사단 ‘화기중대’였다.

6사단의 경우 강원도 철원군 지역 군사분계선 최전방 GOP와 GP 경계임무를 담당하는 부대로 당시에는 사단 예하 3개 연대가 교대로 GOP 순환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대 배치 1달 후 GOP로 교대 투입되었다.


GOP.

일반적인 부대와 달리 ‘비무장지대’와 맞닿아 있는 그곳.
DMZ라 일컫는 비무장지대에서 임무 수행을 하는 GP를 제외한다면, 이곳 GOP는 전방 중의 전방이었다.

GOP에 투입되는 부대는 24시간 365일 경계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특성으로 인해 주말 휴식이 따로 없고 휴가와 외박, 외출 등이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와중 나는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베는 겨울, 상황병으로서 경계근무가 아닌 소초 내 상황실에서 열화상카메라, 모니터링 등으로 경계근무를 섰다.

경계근무, 청소와 점호,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반복된 하루.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보단 ‘소속되었지만 나를 설명할 언어가 없는 상태’로 매일을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사, 교육 행정병이었던 본부소대의 병장 한 명이 각 소대별 소초를 돌다 우리 소초에 들러 나를 불렀다.
“야, 너 글씨 예쁘게 쓰더라?”
“저 말씀이십니까?”

"보고서 쓸 때, 너 글씨 보고 누가 그러더라. 너 국문과라고?"

"예, 맞습니다."
“그럼 너 혹시 편지 잘 써?”

그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이등병 말미에 ‘행정병’으로 편제가 바뀌었다.
사실상 전역 전 후임병을 물핵 중 좋게 봤는지 같은 분대 안으로 끌어당긴 셈이었다.

행정병이 된다는 건, 총 대신 펜을 든다는 뜻이었다.
보직은 ‘인사·교육계원’.

GOP 내 작전이 투입된 부대의 행정병 또한 마찬가지로 소대처럼 소초별 생활을 하지만, 당시 비무장지대 내부에 투입되어 작전을 수행하는 수색대대와 함께 조금 더 큰 부지에서 생활을 했다.

달라진 장소만큼이나, 업무도 달라졌다.

보고 문서, 인원 이동 정리, 훈련 기록, 행사자료, 사진 관리…
매일같이 PC 앞에 앉아, 사람의 이름과 숫자를 연결하는 일을 했다.

총 대신 펜을 쥔 나는, '조직의 질서를 문자화하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엑셀 파일 속 행 번호에 맞춰 인원 현황을 수정하고, ‘현재 병력 수 대비 작업 가능 인원’을 계산하며, ‘중대장 결재선’을 정확히 지켜야 하는 보고 체계. 군대란 조직은 언어와 문서로 움직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 안에서 사람이 빠르게 지워질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매일 실감했다.

“아, 쟤는 지금 훈련소 가 있음.”
“걘 지금 전출 예정자니까 놔두고.”
이름 석 자가 현황표 위에서 빠르게 이동하고 때로는 ‘공란’으로 사라졌다.
그걸 보고 있자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너무도 쉽게 한 줄로 정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씁쓸했다.

그래서 나는 작은 복수처럼 보고서 구석에 메모를 남기곤 했다.
‘훈련 성실히 수행 중인 모 병장은 지난달 작업 기간 중 단 한 번의 이탈도 없었음.’
그건 아무도 보지 않던 기록이었지만, 나에게는 ‘사람을 남기려는 시도’였다.


눈이 내리던 겨울밤, 초소 근무를 서고 내려오는 길에 나는 수첩을 꺼내어 글을 썼다.
“오늘 병장 김○○, 후임이 춥다고 외투 벗어줌.”
“상병 이○○, 소리 내어 웃는 걸 처음 봄.”
이유 없이, 그냥 기록하고 싶었다.

이후 그 메모들이 나만의 ‘조용한 병영 일기’가 되었고 어느 날엔 중대장이 그것을 우연히 보고 말했다.
“너, 이런 것도 써?”
“예, 그냥… 기억하고 싶어서요.”
그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는 아마, 사람 쪽 일이 어울릴 거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고 아마 지금의 내가 인사담당자라는 일을 하게 된 가장 오래된 씨앗이 그날 심어졌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단 전체가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했다.

임병장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동일한 전방 GOP 부대에서.

내가 근무 중인 부대는 그 충격을 간접적이나마 역설적이게도 고스란히 받았다.

그날 밤, 초소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실탄을 장전한 채 근무에 들어갔다.
단지 다른 날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조금 더 경계태세를 강화했다는 것.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피부로 느껴질 만큼 긴장감이 공기처럼 떠다녔다.


며칠 후 나는 사고 부대에서 근무 중이었던 훈련소 동기와 소대장 등으로부터 그날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내 동기는 당시 사고 부대의 인접 GOP 부대로 인원 순환 지원을 요청받아 그 현장에 있었다.

거긴,
조용했다고 한다.
너무 조용해서 더 무서웠다고 했으며,

모든 병사들이 눈치를 봤고,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무언가 부서진 조직’ 안에 있다는 걸.

나는 그곳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날의 정황들을 조심스레 접했다.

사건 발생 당시 그 누구도 그의 손에 들린 수류탄과 실탄이 장전된 총을 막지 못했다.


나는 그때부터 매일 아침,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누가 조용한지,
누가 점점 말이 줄었는지,
누가 야간 근무 후 더 피곤해 보이는지.

시간이 흘러 나는 상병이 되었고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분대장’이 되었다.

처음엔 당황했다.
내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
내가 뭔가를 놓치면,
그 누군가의 하루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감각.

그리고 그즈음, 내 분대에 새로운 병사가 배치되었다.

‘그린캠프 출신’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그린캠프는 군 생활 중 심리적 고충을 겪는 병사들이 상담과 회복을 위해 일시적으로 보내지는 시설이다.
그는 조용했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눈빛은 종종 멍했다.

나는 그를 관찰했다.
“괜찮냐?”라고 자주 물었고, 업무 강도를 조절했고, 사소한 질문에도 ‘감정’을 먼저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그 병사가 사라졌다.

‘내부 탈영.’
군에서 가장 무겁게 다뤄지는 단어 중 하나인 ‘탈영’
나는 그날 새벽, 세탁기 안에 숨어있던 그 친구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 갑작스레 출동한 헌병대의 취조를 받고 있었다.

다음 날 전출은 빠른 속도로 결정되어 그 친구가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기 직전 기회가 되어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너, 어디 갔었어.”
“… 그냥, 숨고 싶었어요.”
“보고 없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알아요. 근데… 모두가 나 때문에 불편해지는 게 싫었어요.”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많은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어떤 말도 입 밖으로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다시 그린캠프로 갈 때 나는 묵묵히 짐을 꾸려주었고, 추가로 사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날 오후, 나는 추가로 헌병대로 가 진술서를 작성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나는 손을 떨었다.
그날의 책임이, 내 안에 파고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람을 대하는 감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병사는 괜찮을까’
‘이 대화는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까’
‘저 아이는 정말 피곤한 걸까, 아니면 지친 걸까’

그리고 매일 밤 나는 수첩에 메모를 남겼다.
“오늘, 병장 김○○가 말없이 후임에게 물을 건넸다.”
“상병 이○○가 초코파이를 나눠줬다.”
“그린캠프 출신 병사가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나는 그것들을 문서로 남기지 않았다.
공식 기록도 아니었고 보고 대상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사람을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내 방식이었다.


군 생활의 끝자락에 나는 중대 행정실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떠나고,
그 사람을 대신하는 또 다른 이름이 들어오는 그 질서 속에서 나는 ‘조직’이라는 세계의 움직임을 처음으로 배웠다.

그리고 그 조직 안에서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평면화되고 얼마나 자주 감정이 생략되는지를 보았다.

그래서 나는 행정병이었지만, 사람을 위한 관찰자가 되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수첩을 한 권 갖고 있다.

거기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문장들이 적혀 있다.
‘눈이 왔다.
누군가는 혼자 웃었다.
나는 그걸 보고 있었다.’

그 문장은 아무 문서에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나의 조직 감각의 출발점이자, 사람에 대한 감수성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되었다.

GOP.
눈 내리는 초소.
행정병 병장.
그리고 총 대신 펜을 든 나.


현재 나는 인사라는 길을 택했다.
사람을 기록하고 조직의 감정선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문장을 좋아하던 내가 결국 ‘사람의 흐름’을 문장처럼 읽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그 초소를 떠올린다.
눈이 내리던 날,
가장 조용했던 초소,
그 안에서 나는 질풍 같은 바람을 견디며 결국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그 순간을.

이 순간이 내가 스스로를 믿게 만든 첫 번째 질풍이었다.

“그때의 선택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조직은 시스템이지만,
사람은 언제나 문장이 되어 남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