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투잡 취업 후기와 나
일을 시작했다. 그것도 두 개나. 하나는 텐동가게, 하나는 이주공사(Immigration Consultant)이다. 일을 시작한지 각각 3주, 1주 되었다. 그 간의 느낌을 기록해본다.
a. 일을 하게된 계기
시간은 흘러가는데 구해지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집 주변 가게들에 레쥬메를 뿌리기로 한 날이었다. 출발 전 다음카페에서 우연히 도보 10분 거리의 텐동집 구인공고를 보았다. 그래서 직접 가서 이력서를 주고, 집에 와서 다시 메일을 넣었다. 운이 좋게도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b. 인터뷰
인터뷰는 식당 내 테이블에서 진행되었다. 영어로 진행되었고, 매니저는 한국인 같았으나 영어가 이쪽 사람이라 2세쯤이겠거니 생각했다. 서빙이므로 최대한 웃으면서 얘기했고, 실제로 재밌었다. 10분 정도는 지원동기, 자기소개, 경력 등을 물어봤다. 그 뒤엔 어쩌다보니 이런저런 잡담하다가 20분이 흘러서 끝이 났다. 결과는 3일 뒤에 알려준다고 했다.
c. 합격 및 첫 출근
3일 뒤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 날 저녁에 바로 문자가 왔다. 운이 좋았다. 첫 출근은 11월 16일이었다. 이것저것 설명을 모두 영어로 들었다. 그 슈퍼바이저는 다시보니 한국인이었다. 아마 일종의 테스트가 아니였을까 생각했다.
한국이었으면 5~6명이서 돌릴 것 같은 식당을 여기선 10명 정도로 돌리고 있었다. 그만큼 일에 여유가 있다. 한국의 식당 알바처럼 혼을 빼놓고 일하지 않을 수 있고, 그만큼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좋다. 영어는 예상대로 크게 늘 것 같지 않다. 막상 보면 사용하는 말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스몰토크나 기출변형이 발생하긴 한다.
d. 지금까지 후기
일이 돌아가는 것은 한국과 별 다를게 없다. 서버의 역할이 조금 더 전문적이라는 것만 다르다. 테이블을 계속 예의 주시하고, 불편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고 등등. 나는 이게 더 즐겁다. 팁 문화가 있으니 서비스에 더 의욕도 생기고 말이다. 손님들을 계속 보다보면 재미라는게 뭘까 싶기도 한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길래 우리는 친구 만나서 엄청 떠들어대는걸까. 생산적일 때도 잘 없는데. 또, 그냥 문득 든 생각인데 텐동은 재패니즈 패스트푸드 같은 느낌이 있다. 맥도날드에서 튀김을 많이 쓰는 것 이유에서 야기했다.
사실은, 이 뒤에 적을 이주공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의 쉬프트 가능 시간(Availability)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회사 내규인지 4시간이 최소 쉬프트 시간이라 6시부터 10시까지 하는 클로징만 유일하게 가능한데, 어떻게 아직까지 조율이 되어서 안잘리고 살아남아있다. 트레이닝 기간 중에 클로징을 준 역사가 없음에도 배려해준 매니저 Kelly에게 무한 감사를.
a. 일을 하게된 계기
마찬가지로 절박한 심정으로 한인 커뮤니티를 찾아보던 중이었다. 사무보조(Office Administration)와 마케팅&세일즈 보조(Assistant)를 뽑는 곳을 보았다. 이민 관련 업무에 영어 중상급 필수... 한인회사라도 충분히 영어를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데 이력서를 넣었다. 얼마 뒤 인터뷰 요청이 왔다. 메일을 다시 보니 에어캐나다 제출용 커버레터가 첨부되어 있었다. 역시 커버레터는 읽지 않는 것인가. 어쨌든 '그래 내가 한국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스펙이야.'하며 은근한 자존감의 상승을 맛보았다.
b. 인터뷰
쭈뼛쭈뼛 들어가 응대실에서 면접을 보았다. 매니저님은 커버레터의 에어캐나다를 언급하시며 입을 떼셨다. 아이스 브레이킹용인 듯 했다. 결론적으로 말씀하신 인터뷰 요청 계기는 이러했다.
'사실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치원씨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이기도 하고, 학교를 아직 졸업하지 않아서 한국에 돌아갈 확률이 굉장히 높구요. 그런데 이력서에 적어주신 브런치를 너무 인상깊게 읽어서 궁금했어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보라고 적어놓은 것이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 글을 모두 읽었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워지는 모순이다. 어쨌거나 좋게 생각해준 것이니 다행. 오랜만에 한국어로 면접이 진행되니 편안한 마음으로 술술 말할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며 면접관에게 퀴즈를 내는 객기까지 부렸다. "매니저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말이다.
LMIA의 프로세스를 나에게 한국어로 가르쳐주더니, 전화로 고객에게 영어로 설명하는 상황극을 시험하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정보에 긴장이 더해져 원활하지 못했다. 인터뷰 후에 아쉬워했던 부분. 그렇게나 몰입한 인터뷰는 40분이나 지나서 끝이 났다.
c. 2차 인터뷰
나는 사실 연락이 다시 올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오래 일할 사람 찾는데 나를 왜 뽑냐는 말이다. 그런데...
예상에도 없던 2차 인터뷰가 나타났다. 무슨 대기업도 아니고 2차 면접이야. 이유에 대해 한번 고민해봤다.
'마음에는 정말 드는데, 오래 일하지 못한다고 보고했더니 팀장님이 직접 보겠다고 했다.'정도가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어쨌거나 2차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이번엔 20분 밖에 보지 않았다. 했던 얘기는 1차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나를 뽑는게 리스크가 있으니 먼저 파트타임을 제안했다. 꼭 풀타임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c. 합격 및 첫 출근
며칠 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파트타임으로 먼저 일 해보고, 풀타임으로 전환하자고. 오히려 좋았다. 서빙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
오피스잡의 첫 출근이야 다 비슷비슷하다. 여기가 내 테이블이고, 이게 내 노트북, 업무는 이런 것들이 있고, 계정은 어떤 것을 사용하면 되며... 당장은 할 일 없으니 일단 메일함 보면서 업무파악... 을 조금 하고있었을까. 어쨌거나 여기는 이민컨설팅 회사이므로, 캐나다로 이민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어떻게보면 한국에서 인재를 빼와야하는 원수였다. 한국의 뛰어난 치위생사들을 캐나다로 데려오는 과정(자격증 전환)을 한번 피피티로 정리해보라고 해서 작업했다. DA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따로 정리해보겠다.
d. 지금까지 후기
순수 출근일만 이제 10일밖에 되지 않았다. 사수분이 워낙 좋으셔서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주신다. 영어 메일 넣을 일이 굉장히 많고, 상담을 사수분과 자주 같이 들어간다. 열심히 배우고 있지만 파트타임이라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풀타임 오퍼를 얼른 해줬으면 좋겠는데.
이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력서를 보면 내가 왜 일이 안구해졌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자기 나라 학사 정도는 보통 가지고 있고, 그 나라에서 좋은 일 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여기 와선 디시워셔, 쿡, 뭐든 할 테니까 일하게 해달라고 한다. 이럴 때보면 한국이 참 좋은 나라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세상이 각박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매력적인 나라이기도 하니까. 이민국이 주는 기쁨일까? 한국보다 스트레스가 확실히 적다.
2012년이었을까. 컴퓨터 속 형의 음악폴더를 그대로 갤럭시S2에 붙여 넣었다. 그 중에는 브로콜리너마저라는 괴상한 이름의 가수가 있었다. 노래 제목은 유자차. 이름과 다르게 따뜻한 목소리가 너무 좋아 자주 들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나의 MP3에는 브로콜리너마저가 있었다. 서울로 학교를 가게 된다면, 꼭 브로콜리너마저의 공연을 보러 가리라 생각했다.
2017년 여름, 홍대 웨스트브릿지에서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행복한 순간. 빨간색 벙거지를 쓰고 우상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당시의 나로부터 5년이나 멀어졌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다시 그 시간을 사는 방법은 없나. 사진과 일기장 여행하기. 그리고 머릿 속에 단단히 남겨놓기 정도.
오후 1시부터 5시, 다시 6시부터 10시. 그 사이에 이동시간 40분. 급하게 맥도날드 햄버거를 입에 우겨넣으며 두번째 출근을 하는 길. 브로콜리너마저의 '2009년의 우리들'을 듣는다. 언젠가 이렇게 힘들었던 날을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미래의 나에게 은근한 위로를 받는다. 다시 찾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니까. 이 때의 브로콜리너마저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