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호, 『공부 공부』
한국 학생과 공부와의 악연은 이미 오래된 풍문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유치원부터 취준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공부를 멈춰본 적이 없다. 학생들의 삶은 공부의 연속이다.
공부란 단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들이 알고 있는 '공부'와 '배움'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공부'라는 것은 결국 선행학습 / 국영수 / 수능 / 자기소개서 / 토익·토플 / 자격증에 불과하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 이 '공부'들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진짜 공부, '배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공부의 본질은 지혜에 대한 '사랑'에 있다.
「공부 공부」의 1장에서는 한국 학생들이 지금까지 어떤 목적으로 공부해왔는지를 다룬다. 교육 광풍으로 요약할 수 있는 한국 교육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어떻게 학생과 학교가 병들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공부는 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왜 지혜를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엄기호는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 성과주의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다. 성공하지 못하면 모두 패배자가 되는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초조함과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 나아지기 위한 '자기계발'과, 꿈을 이루겠다는 '자아실현'은 자기를 학대하고 착취하는 '자기파괴'가 되어간다. 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한계를 아는 사람이다.
엄기호는 2장부터 '자기배려'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자기배려란 자기를 돌보는 것이고, 자기를 돌보기 위해서는 자기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공부를 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한계를 알기 위해서다.
우리는 한계를 부정적으로 여긴다. 할 수 없다는 말에 민감하다. 성공을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우리는 끝없는 자신감과 능력을 요구당해왔다. 한계를 인정하는 건 패배자가 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한계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한계란 우리의 잠재 능력을 안전하게 키워줄 수 있는 일종의 울타리다.엄기호는 한계를 아는 것을 통해 무엇이 가능해지고 어떻게 탁월해질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진짜 공부란 내가 누군지 아는 일이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지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
배움을 의지하기를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중략)
그렇기에 공부工夫는
공부共扶가 된다.
더불어 돕는 게 공부다.
공부는 내가 누군지 알려준다. 내가 무엇을 못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우리는 저마다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의지한다.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나아가서 이 과정이 기쁨이 되어야 한다고 엄기호는 말한다. 공부는 '내가 누군지 알려줘'에서 '나의 기쁨이 되어줘'로 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바뀌는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공부가 고통인 시대에 원래 그것이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