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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우리는 1분의 친구야

김혜리,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by 소하연


수다 떨기 좋은 주제로 영화만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국문과에는 책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건가, 싶을 정도로 영화 얘기는 과실, 술자리에 넘쳐났다. 내가 놀랐던 건 그 중 몇몇은 분명한 취향과 상당히 높은 수준의 비판·분석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미국식 히어로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이 취향의 전부인 나로선 그들이 어디서 그러한 해박한 정보를 가지고 왔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흥미가 생겨 그들에게 볼만한 영화를 물어보면 꽤나 '있어'보이는 작품을 소개해주었다. 그 중 몇 개는 챙겨보았고, 몇 개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나는 작품만을 온전히 감상했다기보단, 내게 영화를 소개해준 그들이 이 영화 속 어디서 어떻게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더 집중하고 궁금해 했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말해, 나는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그들을 바라봤다. 아, 네가 여기서 웃음을 터뜨렸겠구나, 여기서 잠깐 숨죽였겠구나, 하는 식으로. 그럴 때면 나는 잠시나마 영화를 봤던 과거의 너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현재의 내가 연결되었다는 착각을 하곤 했다. 그건 조금은 들뜨고 행복한 착각이었다.


내가 사랑스럽다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엇인가, 사람 혹은 사물, 아니면 특정한 신념을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가꾼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진지하고 아름답게 남에게 전할 수 있다. 그 순간을 즐긴다. 영화를 얘기해주면서 그것이 좋다, 아쉽다 전해주는 사람의 사랑스러움은 그 얘기를 나누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그 영화에도 깃들어있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의 김혜리는 그런 점에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이 책은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라는 씨네21에 연재되는 2-3장 분량의 짧은 영화비평을 출판사 어크로스에서 엮은 것이다. 제목이 김혜리의 '영화 일기'가 아니라 왜 '영화의 일기'인지에 대해 저자는 서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저널의 제 1저자는 내가 아니라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의 일기'를 쓰는 나는 다만
매일 영화가 보여준 것을 적어두는 속기사였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나는 책장을 덮고 나서 영락없이 팬이 되어버렸는데, 그녀의 글이 가지는 미덕이 위의 문장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김혜리는 글로써 영화를 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글 안에서 비평가, 감상자로서의 에고를 자랑하지 않는다. 비평으로 작품 위에 올라서고 글 솜씨를 과장해서 전하려는 바를 놓치는 식의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동시에 그녀는 아부하지 않는다. 볼썽사납게 작품을 치켜세우거나 방어적으로 글을 수축시켜 비굴하게 보이게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선 번역가의 겸손이 엿보인다. 스스로를 영화의 속기사라고 칭했듯, 영화와 비평가 사이의 적절한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를 그녀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같이 영화관을 빠져나와 이러쿵저러쿵 떠들게 되는 친구 같은 사사로움과 친근함 역시 있다. 그녀는 가르치지 않는다. 이 책이 펼쳐 보이는 영화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맞아 나도 똑같은 생각이야!'라며 맞장구치게 되는 것이다.


그 겸손함과 친근함이 영화를 명확하고 아름답게 조명하면서도 역설적이게 작가로서의 그녀를 빛나게 하는 것은, 그녀의 문장에서 기어코 배어나오는 영화를 향한 애정과 믿음 때문이다. 분석의 잣대를 먼저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감상자를 매료시키는 그만의 고유함이 무엇인지를 사후적으로 추리하는 방식. 그 모습은 마치 '어찌 되었건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하는 자연스러운 연애 초기의 감정과도 유사해 보인다.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 영화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일, 나와 영화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아름다움을 믿고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문장들, 그 순수함이 그녀의 가장 큰 장기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팬이 된 이유는, 글을 잘 쓴다. 이렇게 말하는 게 조금 무책임하긴 하지만 그녀는 그저 글을 (질투가 날 정도로...) 잘 쓴다.


너와 내가 같은 영화를 볼 때 우리는 같은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마코토가 치아키를 만나러 달려갈 때,「그녀」에서 사만다가 테오도르에게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거죠'라고 말할 때,「캐롤」에서 캐롤과 테레즈가 서로를 바라볼 때.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놀이를 전혀 다른 공간 속에서 함께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얘기함으로써 우리는 같은 시간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무언가를 전하는 일은 흔히 느낌이라고 말하는 포착될 수 없는 시공간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문을 여는 일이다. 당신은 영화를 보고 나는 그런 당신을 바라본다. 영화에서 우리는 만난다. 함께한 시간 만큼 우리는 친구가 된다, 아주 단순하고 뚜렷하게.
이 세상에는 김혜리처럼 무언가를 전하는 일이 그만큼 벅차고 들뜨는 일이라 믿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이 책을 통해, 그리고 내가 쓴 이 글을 통해 나와 김혜리는 딱 그만큼의 친구가 되었다. 좋은 친구가 생기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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