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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로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by 소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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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글은 유려하면서도 묵직하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이 그렇다.


산문시를 꿈꾼 흔적이 없는 산문은 시시하다.
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다.

신형철,『느낌의 공동체』中

자세히 보면 그의 문장은 복문인 경우가 더 많고, 비유법도 자주 사용된다. 복잡하게-길게-화려하게 쓴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가독성은 훼손되지 않는다. 글쓰기 실용서가 좋은 문장의 요건으로 ‘짧고 간단한 문장’을 자주 손꼽는 걸 생각해보면, 외줄 타기 같은 그 글쓰기가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문장을 써야겠다는 이른바 스타일, 문체가 있다. 문체는 일종의 목적과 우선순위를 내재하는데, 누군가는 가독성을 우선순위에 놓을 것이고 누군가는 문학적 모호함을 내세우는 식으로 천차만별이다. 글의 목적과 장르에 따라 또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신형철이란 문학평론가의 스타일이 우선으로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모든 해석자는 ‘더’ 좋은 해석이 아니라 ‘가장’ 좋은 해석을 꿈꾼다.
이 꿈에 붙일 수 있는 이름 하나를 장승리의 시 「말」의 한 구절에서 얻었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내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신형철의 영화 비평을 묶은 책이다. 문학평론가라는 제약과 한계 안에서 그가 만들어내는 수려한 영화 분석이 이 책의 첫 번째 볼거리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글 전반에 드러나 있는 정확함에 대한, 혹은 사랑에 대한 신형철의 태도를 듬뿍 느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사랑받는 사람들은 정확한 사랑을 원한다. 정확하게 사랑받는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상대는 그런 나를 보여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나의 사랑스러운 면도, 혹은 끔찍한 면까지 다 상대가 끌어안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정확한 사랑을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최대한 그를 훼손시키지 않은 채로 내 안에 담아내야 한다.
다만 정확한 사랑의 ‘느낌’이라는 건 순전히 받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에, 사랑을 주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경험한다. 나는 분명 너를 사랑하고 있고, 너를 아꼈는데 그렇게 받아주지 않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으리라 믿는다. 거꾸로 내가 바라는 사랑의 모양을 상대가 결국 이해하지 못했을 때의 절망 또한 느낀 적이 있으리라 믿는다. 이때 의지가 필요해진다. 어느 순간 실패하더라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방식이, 해석자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신형철은 말한다. 그래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다. 이 제목이 곧, 신형철이 비평하는 방식이고, 그의 스타일이다. 그는 사랑하는 것처럼 비평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을 언급하는 서문의 마지막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런 사랑 고백을 받은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조금 부러워지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내 아내 신샛별은
이 책이 다룬 거의 모든 영화를 함께 보았고
최상의 토론 상대자가 되어주었으니
사실상 공동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하나를 나는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썼다.
그녀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로 남은 생이 살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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