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하극장

나를 미워해도 돼

"주토피아"

by 소하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나는 공주가 아니에요!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한 적 있다.


"요즘 태어나는 애기들은 좋겠다. 우리는 어릴 때 빻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같은 디즈니 애니 보면서 자랐는데, 요즘 애들은 겨울왕국이나 모아나 같은 것부터 볼 거 아냐."


정확히 옮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아주-아주 동의했던 기억이 난다. 이 말은 디즈니의 세계관이 현시점에 어떤 위치에 와있는지를 드러낸다. 더 이상 디즈니의 공주들은 돈 많고 잘생긴 왕자에 의해 행복이 결정되지 않는다. 막강한 마법 능력을 통제할 수 없어 세계와 갈등하는 왕(겨울왕국)의 이야기나, 섬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면서 ‘나는 공주가 아니에요!’라고 선언하는 섬 아이(모아나)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점점 외연을 넓혀가는 디즈니 페미니즘 월드는 아예 ‘포유류’를 주인공으로 삼아 성性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영화, 『주토피아』다.


2. 고유성(Characteristic)과 젠더(Gender)

디즈니는 대중적 정서를 감지하고,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 불편하지 않을 만큼 이야기로 가공하는데 천부적인 콘텐츠 기업 중 하나이다. 『주토피아』는 성장 서사와 미스터리 추적 서사를 결합한 흥행성이 높은 이야기인 한편, 심층적인 주제로서 권력, 차별, 혐오, 편견, 위계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얼핏 불편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비교적 거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캐릭터가 ‘동물’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종은 인간의 고유성(Charateristic)과 등치 할 수 있다. 곰처럼 미련한, 토끼처럼 멍청한, 여우처럼 교활한 어떤 ‘누군가’처럼,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사를 그대로 실물화해서 애니메이션 안에 끌고 들어온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토끼 ‘주디’가 주토피아에 입성할 때 어떤 식으로 주토피아라는 도시가 다양한 동물들의 종, 신체적 특징과 고유성을, 하나의 종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존중하고 융합하고 있는지를 드라마틱한 연출로 보여준다. 중간중간 차량번호를 조회해주는 나무늘보나, 인도 억양을 가진 아르마딜로 할머니와 같이 동물-계층의 전형성을 포착해 재현하는 유머 역시 『주토피아』의 강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무엇보다 『주토피아』에서 중요한 지점은 영화에서 동물들이 포식자-육식동물(Predator)과 피식자-초식동물(Prey)로서 구분됨과 더불어, 영화 내부의 캐릭터들이 ‘포식자스러움’과 ‘피식자스러움’을 사회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물들의 개성을 이분하는 ‘젠더’라는 레이어가 덧씌워진다. 『주토피아』가 여느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가장 두드러지게 차별화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젠더 개념을 전면화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3. 사적인 젠더갈등

『주토피아』는 편견과 차별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가진 두 주인공과 함께 ‘젠더갈등’이라는 관문을 돌파한다.

주디는 경찰이 되려 하지만, 주변 모두가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다고 만류한다. 영화는 주디가 경찰이 되는 과정을 부당한 편견에 ‘항의하는’ 모습이 아닌 자신만의 노력과 능력으로 편견을 ‘지워버리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경찰이 된 주디에게는 자신감이 넘쳐흐르지만 사실 거기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맹신만 보일 뿐, 성차별적인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닉은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다. 세상이 여우를 교활하게 본다면, 굳이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겠다는 닉의 대사는 모든 개성이 완벽하게 융화되어있는 것 같은 주토피아의 이면을 엿보게 한다.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Anyone can be anything)'는 주토피아의 메시지는 닉에게 환상이며 무엇이든 해보자(Try Everything)라는 구호는 닉에게 유효하지 못하다. 두 주인공이 초반에 불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맥락이다. 여우의 눈에는 헛된 도시의 신념을 믿는 토끼가 멍청해 보일 수밖에 없고, 토끼의 눈에는 심술궂게 일을 훼방 놓는 여우가 뭐 저리 꼬여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닉과 주디는 주토피아에 존재하는 육식-초식간의 갈등, 젠더갈등을 표상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는 이를 사회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소홀하다. 애초에 주토피아에서 벌어지는 젠더 간의 불화를 어떤 열등감에 찬 한 악인 캐릭터가 꾸며낸 음모로 설정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 갈등은 사적이다. 주디는 어릴 때 여우에게 당한 위협을 기억하고 있고, 닉은 자신이 육식이라는 조건 만으로 배제당한 트라우마가 있다. 때문에 주디는 육식동물이 야수화되는데 있어 그들의 본능이 관련 있을 거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었고 닉은 주디에게 실망하여 떠난다. 이 영화가 닉과 주디의 러브스토리로 이야기되고 2차 창작되는 맥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4. 사과하는 법에 대하여

갈등이 사적으로 조장된 만큼 그 해결 역시 사적일 수밖에 없다. 진실을 알게 된 주디는 닉에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호소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한다. 화해는 빠르게 이루어지고 진실이 밝혀지며 주토피아는 평화로워진다.

혹자는 이 결말이 너무 낭만적이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주토피아』를 인종, 성의 차별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이야기한 영화라고 한다면, 잘 만든 영화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어떤 특수한 조건, 개성으로 인하여 초래된 갈등에 대해 당사자들끼리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옳은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견해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영화 속 갈등이 사적이라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포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직선 책은, 평등한 소통과 깨끗한 인정, 진정성 어린 사과이다. 소통이 평등하지 못할 때 구조적인 해결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주토피아』속에서는 벨웨더의 음모가 소통을 방해한다. 작금의 젠더 갈등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음모가 아닌 구조적인 현실이라는 것만이 다른 점일 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것. 진실을 포착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진실을 가운데 두고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사자들 간의 필요한 만큼의 사적인 소통이다.

적어도 『주토피아』는 우리가 상처 입힌 상대방에 대해, 상처 입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사과해야 하고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셈이다.


I know you'll never forgive me. And I don't blame you.
나를 용서 못할 거 알아. 네 탓이 아니야.
I wouldn't forgive me either.
나도 내가 용서가 안되니까.
I was ignorant, and irresponsible, and small-minded.
내가 멍청했고, 무책임했고, 찌질했어.
The predators shouldn't suffer because of my mistakes
육식동물들이 내 실수 때문에 고통받아서는 안돼.
I have to fix this.
바로잡아야만 해.
But I can't do without you.
근데, 너 없이는 안돼.
And... after we're done, you can hate me. And that will be fine.
만약 이 일이 전부 끝나면, 나를 미워해도 돼. 그래도 괜찮아.
Because I was a horrible friend, and I hurt you.
나는 너에게 끔찍한 사람이었고, 너에게 상처를 줬으니까.

주토피아 中 주디의 대사.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의역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허물이 있다면, 잘못이 있다면,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무엇이 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실수를 하고 망칠 수 있고 얼마든지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고, 그렇게 했을 때 사과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나를 미워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걸까.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은 또 어떤 걸까. 조금은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든 것이 변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