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2017)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범죄도시〉는 2017년 개봉한 영화 중 흥행 6위를 기록했고, 청불 영화 중에서는 1위, 역대 청불영화 중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마동석은 이 영화를 기점으로 무시할 수 없는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임을 증명했고 배우 윤계상 역시 ‘장첸’이란 캐릭터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해 SNS나 TV 프로그램은 장첸을 패러디하는 2차 창작물들을 쏟아내면서 〈범죄도시〉가 단순히 7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들인 것 이상의 콘텐츠 적 영향력을 보여주었음을 증명했다. 동시에 〈범죄도시〉는 2017년-한국에서 노골적인 혐오와 폭력을 전시하는 영화가 이 정도의 흥행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증명했다.
〈범죄도시〉는 ‘마석도(마동석 분)’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을 상당 부분 영화 외적으로 마동석이 배우로서, 캐릭터로서 형성하고 있던 이미지 자산으로부터 ‘훔쳐 온다’. 훔쳐 온다는 표현은 지나치지 않다. 만약 마석도라는 형사 캐릭터를 마동석이 아닌 배우가 연기했다고 상상해보자. 마석도는 성구매를 한 뒤 태연하게 범죄 현장에 합류하고, 심증뿐인 피해자를 ‘진실의 방’으로 데려가 폭행한 다음 이를 희화화한다. 이 영화는 성구매/고문 형사가 ‘선’이고 가리봉동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조선족을 ‘악’이라고 규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관객이 그토록 쉽게 마석도가 ‘선’이라고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험악하게 생겼지만 어딘가 러블리한 ‘마동석’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마동석으로부터 많은 것을 빚지고, 마동석을 내세워 많은 것을 은폐한다.
〈범죄도시〉가 전시하는 여성혐오는 극악한 수준이다. 극 중 장첸은 술집 주인 안혜경(유지연 분)을 강간하는데, 안혜경의 술집 개업을 도와주었던 도승우(임형준 분)는 그녀를 집에서 폭행하면서 ‘걔랑 붙어먹으면 뭐라도 떨어질 줄 알았니?’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안혜경은 이후 장첸에게 협박당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식으로 활용된 후 사라진다. 〈범죄도시〉가 허용하는 ‘괜찮은’ 여성혐오는 성매매 업소에서 성구매를 하는 마석도 정도이고, 허용하지 않는 ‘괜찮지 않은’ 여성혐오는 강간하거나 폭행하는 장첸, 도승우 정도이다. 덜 여성혐오 한 마석도는 ‘해결사’로 그려지는 반면 무자비하게 여성을 강간한 장첸이나, 가장 상위의 폭력에 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성에게 화풀이하는 ‘남자답지 못한’ 도승우는 처단된다. 〈범죄도시〉가 가장 영웅화하는 캐릭터는 ‘나는 여자는 안 때려’라고 기꺼이 말하는 ‘남자다운’ 남자들이다.
도승우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는 강홍석(하준 분)이라는 막내 형사다. 강홍석은 장첸을 비롯한 조선족들 검거에 실패한 이후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무섭다’는 이유로 마석도에게 수사에서 빠지고 싶다 요청한다. 마석도는 너그럽게 강홍석을 보내주고 무거운 책임감을 떠안고 다시 수사에 나선다. 가장 중요한 지점은 이 강홍석 캐릭터가 다시 메인 플롯에 진입하는 장면인데, 강홍석은 장첸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잡고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용기를 지닌 채 장첸을 잡으러 나선다. 극이 마무리될 때 ‘순둥순둥’했던 강홍석은 다시 마석도의 수사팀에 복귀해 선배들보다 더 거친 언행과 ‘남자다운’ 행동을 보이며 선배들을 당황시킨다. 선배들의 어렴풋한 대견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범죄도시〉는 여성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남성 캐릭터 역시 납작하게 재현해내며 기존의 여성혐오/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시킨다. 법조차 지켜주지 않는 가리봉동에 여자가 설 역할 같은 것은 없다. 찌질하게 장첸에게 맞서지 못하고 여자를 탓하는 ‘남자답지 못한’ 도승우는 조폭들의 이권 다툼 속에서 수장되고, 장첸에게 맞서다 부상을 입고 겁먹은 강홍석은 잠깐 퇴장했다가 마석도의 분신과도 같은 진정한 ‘상남자’가 되어 화려하게 복귀한다. (공교롭게도 도승우가 극에서 퇴장하는 씬 바로 이후에 강홍석이 자신의 ‘겁먹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범죄도시〉에는 혐오/폭력에 대한 성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 조각의 성찰도 존재하지 않아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오로지 더 많은 폭력과 이 폭력들을 제압해내는 ‘마동석 판타지’만이 존재할 뿐이다. 공권력이 폭력적이어야 하는 당위를 부여하기 위해 보다 더 폭력적이고 사악한 존재를 만들어내는데, 이 존재들의 정체성은 오로지 ‘조선족’ 일뿐이다. 〈범죄도시〉는 조선족들이 범죄자 중에 유의미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총체적인 통찰은 생략하고, 그들을 마동석이 처치해낼 만한 적당한 악당으로밖에 바라보지 않는다. 장첸의 폭력은 갈수록 잔혹해지고 마석도의 폭력은 유쾌하고 통쾌해진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것은 마동석이라는 캐릭터의 완성을 목도한 관객의 기분이다.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에게 맞서던 마동석을 러닝타임 121분 동안 마음껏 관람한 관객의 감상이다. ‘마동석 판타지’가 은폐한 이면에는 이런 생각이 자라난다. 조선족은 폭력적이고 위험하다. 여성은 위험한 상황에서 보호받아야 한다/쓸모가 없다. 악(조선족)에 대항하지 못하는 남자는 찌질하고 비참해지고, 끝까지 맞서는 남자만이 진짜 남자다. 나는 여자는 안 때린다. 저런 나쁜 놈들은 맞아도 싸다.
이수역 폭행 사건의 팩트와는 관계없이 여성들이 ‘6.9cm’나 ‘소추’같은 혐오 발언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여성혐오를 동반한 공분이 일었다. 그중 가장 문제적인 반응은 ‘저런 애들은 맞아도 싸다’라는 것이었다. 맞아도 싼 저런 애들의 ‘저런’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예쁘지 않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은? 충분히 불쌍하지 않은? 피해자스럽지 않은? 동시에 애초에 맞아도 싼 애들의 범주에는 누가 들어있는 걸까? 어떻게 저 여성들은 그 범주와 동일시될 수 있었을까? 〈범죄도시〉의 흥행은 ‘맞아도 싸다’고 한 반응들과 무관하지 않다. 맞아도 싼 사람은 없지만 〈범죄도시〉는 맞아도 싼 사람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때리는 사람은 ‘남자’, 맞는 사람은 ‘남자도 아닌 사람’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