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를 기르는 법"
서울을 어떤 도시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군가는 한강, 남산타워, 아름다운 야경 같은 것들을 떠올릴 테지만, 누군가는 극심한 교통체증, 미세먼지, 꺼지지 않는 야근의 불빛 같은 것들을 먼저 떠올릴 겁니다.
서울에는 수많은 '혼자'들이 살고 있다 합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가동하지 않는 포크레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혼자들도 있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낚아채지 않을까 늘 불안해하는 혼자들도 있고, 그저 내가 나이고 싶은데 그걸 잘못됐다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명해야 하는 혼자들도 있습니다.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그 많은 혼자들이 스스로를 길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중장비보다 오래 일했습니다.
p.21, "혼자를 기르는 법 1"
주인공 '이시다'는 훌륭한 분'이시다'!라는 대접을 기대받으면서 태어났지만, 현실은 디자인 회사 막내로 '시다'바리 역할을 맡고 있는 2,30대 여성입니다. 그녀의 서울살이가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원래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하면서 계속 되묻는 일상.
아이러니입니다. 시다가 살아가는 서울은 그녀의 이상과 기대를 너무 쉽게 자주 배반하는 도시인 것 같습니다. 파이프와 전선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거주 계약조건으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견딜 만큼은 불행해도 되는,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건 어쩌면 시다를 비롯한 혼자들에게 이런 아이러니로 가득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쩔 때는 웃음이, 대부분은 헛웃음이, 결국에는 눈물이 조금 맺히고는 합니다.
비밀이 하나 있는데요... 저 사실 전입신고 못했어요.
그게 여기 조건이었어요. 그래야 계약해준다고...
용산구는 저를 몰라요.
p.392, "혼자를 기르는 법 1"
"혼자를 기르는 법"은 아이러니를 사용하면서 '혐오'와 싸웁니다. 혐오는 어떤 존재를 주체/주어(subject)가 아닌 대상/목적어(object)로만 놓을 때 쉽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을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포르노적인 모습으로만 전시한다거나, 장애인을 치워야 하거나 떠맡아야 할 짐으로 대한다는 식이 그렇죠. 혐오는 강자에서 약자로 향합니다. 시다의 상경을 응원해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그렇고, 골목길에서 시다를 위협한 남성들이 그렇고, 시다의 공황장애를 폄훼하는 동료직원들이 그렇습니다. 물론 시다 역시 절대적인 약자는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약자임과 동시에 강자이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을 수 있음과 동시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웹툰에서는 윤발이가 그런 존재이죠. 시다는 햄스터 윤발이를 기르면서 자신보다 약한 존재와 공존해나가는 방식을 배웁니다. 이 웹툰의 제목이 "혼자를 기르는 법"인 것은 줄곧 공존의 방식을 모색해나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왜 누군가에겐 상처일까요?
p.78, "혼자를 기르는 법 1"
공존의 방식은 혐오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서울에는 여성, 장애인, 외국인, 퀴어, 비정규직, 비인간-동물/식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과 동등하게 공존하는 방식에 대해서 우리는 무지하고 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나 혼자 건사할 틈도 없고 하루하루가 빡빡한데 그런 거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딨냐고 소리치는 사람들도 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이 웹툰이 고민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있는 건 분명할 겁니다. 답을 우리들의 몫입니다.
저도 제 마음이란 걸 모르겠어서
죽고 싶으면서도, 또 살고 싶습니다.
역시 아무것도 하기 싫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봐 겁내는 날들을 보내고 있고요.
p.466, "혼자를 기르는 법 2"
시다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건 자기가 직접 설계한 집에 사는 거죠. 서울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 겁니다. 하지만 집이란 게 꼭 건물로서 세워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집이란 돌아갈 수 있는 곳을 뜻합니다. 어떤 물리적인 장소나, 특정한 지점이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한 상징으로서 저는 집을 이해합니다.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 용기 있게 부딪히고 할 말을 하고 나를 보여주고 나면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때 우리는 돌아올 곳이 필요합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요? 아마 시다의 집에는 화해한 어머니와 아버지, 자기의 동생 시리, 건물 탐방의 와타나베 아저씨, 이웃 언니 해수, 그리고 윤발이가 있을 겁니다.
약속이 있는 것도, 그렇다고 보물을 두고 온 것도 아니지만...
돌아가야죠.
매캐한 나의 목적지, 서울로
p.512-3, "혼자를 기르는 법 2"
이 도시에는 혐오가 넘쳐나고, 상처 입은 밤을 넘기기 위해 우리는 아이러니컬해집니다. 나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보고, 나를 상처 입히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다가도 하는 수 없이 나를 갉아먹는 것들을 가까이 둘 수밖에 없는 순간들도 있을 겁니다. 외롭고 지난한 하루가 계속될 겁니다. 서울에는 수많은 혼자들이 홀로 밤을 새우겠지요. 시다도 시리도 해수도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언젠가 내가 마음 편히 돌아올 수 있는 집을 갖고, 최소한의 나인 '혼자'를 잘 기를 수만 있다면 마냥 지치기만 하지는 않으리라 기대해봅니다. 이 웹툰 속에는 저와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 명 있는 것 같아서, 그들과 함께 살아갈 내일을 생각하고 나면 오늘 밤은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도 감사하지 않은 오늘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이유.
여길 지나,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그래섭니다.
p.524, "혼자를 기르는 법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