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소년을 위로해줘」의 서술자 연우는 17살의 고등학생이다. 연우의 가족은 엄마 하나, 이혼하고 떠난 아빠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연우가 세상에 대해 취하는 자세는 눈에 띄지 않는 것, 무난한 것, 티 나지 않는 것이다. 더 놀라울 것도, 더 재밌을 것도 없는, 상처 입고 억눌려온 소년에게 얼핏 어울리는 스탠스라고 할 수도 있겠다.
소년(少年)이란 말은 한자 그대로 적을 소에 해 년을 써서 '적은 나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소년은 아주 어린 아동과는 구분되며 어른과도 확실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소년이란 말은 '적은 나이' 혹은 어리다는 의미 외에 그 이상을 함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를 만약 '시간'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나는 소년을 '작은 시간'이라 부르고 싶다. 작은 시간이란 무엇일지, 은희경은 이 소설에서 소년이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져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아이는 언제 소년이 되는가? 심드렁한 연우는 학교 추첨장에서 독고태수라는 동급생을 만나게 되고 우연하게 그로부터 G-그리핀(실제 모델 '키비')이라는 인디 래퍼의 음악을 접한다. 음악을 듣는 순간 연우는 그 래퍼가 노래하는 내용이 자신의 이야기라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어릴 적 받아왔던 폭력과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억압들에 대해 떠올리고 흥분을 거두지 못한다. 별 특별한 것 없던 세상이 연우에게 다르게 다가온 순간이다. 은희경이 왜 힙합이라는 (작가 본인에게 익숙지 않을 법한) 소재를 선택했을까 생각해보면, 힙합이야말로 '나를 나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소년의 성격에 가장 걸맞은 음악 장르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힙합은 불온함과 규범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동력으로 힘을 얻는 음악이기도 하다. 연우가 별 특별할 것 없는 세상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이 열광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왜 그럴까,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해
그림보다 빼곡히 채운 Palette, 일기, 잠들었던 시간들
아이유의 「Palette」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스스로가 그걸 알고 있다 표현한다는 점에서 「소년을 위로해줘」의 맥락과 동일하다. 사람이 본질적으로 고유함은 저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무얼 좋아한다고 알아차리는 건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 자신이 유일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 강연우라는 인물은 단 하나, 아이유라는 사람도 하나이다. 내가 무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아이는 소년이 된다. 그 작은 존재가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좋아하는 것을 알고 지켜나가는 순간. 그 순간들의 연속이 '작은 시간', 소년인 것이다.
소년은 그 어떤 다른 누군가와도 구별되기 때문에 소중하고, 소년이 파괴되기 쉬운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연우가 이혼가정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힘이 센 상급생들에게 돈을 뜯기고, 공부를 하지 않아 선생들에게 질책당하는 모든 일들은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와 그를 옭아맨다. 폭력이 세계에서 개인이 그 자신으로 살 수 없다는 문제의식은 고전적이지만 매끈한 답을 도출해 낸 적은 없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을 강요하거나 금지한다. 대개 강요되는 모습은 강자 · 다수의 것이고 금지되는 모습은 약자 · 소수의 것이다. 즉, 폭력은 인간상을 획일화하는 방향으로 운동한다. 입시에 도움 되지 않는 취미는 시간 낭비로 치부되고 조금의 일탈이나 돌출은 위험으로 간주되어 정상의 범위로 깎아내려진다.
「소년을 위로해줘」에서는 연우뿐만 아니라 그 주변으로 폭력을 당하거나 행하는 어른들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이혼한 엄마를 향한 무례한 시선들, 독고태수에게 찍혀지는 불량아의 낙인들, 사회적 남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재욱형, 여자친구 채영을 억압하는 그녀의 부모님 등등. 당장 연우에게는 힙합이라는 자신만의 세계와 소중한 사람들이 옆에 있지만 그 좋은 순간들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소설에 흐른다. 소년은 모든 것이 처음인 시기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그것이 틀림없이 끝난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폭력이라는 악질적인 굴레가 끊어지지 못함은 관계라는 필연적 인간 속성에서 온다.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개인이 상대방을 강제로 동일시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폭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동일시에 대한 욕망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데 그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단절, 폭력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다음은 관용,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마지막은 사랑, 나와 상대가 서로를 자발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폭력을 끊어내기 위해선 이 세 가지 태도를 지키려 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상대를 그 자체로 바라보기 힘들 때가 많다.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자기중심적인 방향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나와 너무 다르다는 사실 만으로 그 사람을 공격하거나 상처 줄 때가 있다. 단지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말이다. 「Palette」의 '날 미워하는 거 알아'라는 가사는 쉽게 자신을 판단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저 '알고 있다고'말한다. 연우 역시 자신 주변에 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에 맞서려 하지는 않는다. 늘 폭력에는 실체가 없고 싸우려 마음먹을 때마다 피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폭력과의 싸움에서 소년은 늘 진다. 그 패배의 순간, 소년은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나씩 잃어버린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은희경은 위로를 말한다. 외롭다는걸, 힘들고 지친다는 걸 알아줄 수 있다. 작가 역시 위로가 공허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위로의 형식을 가장해 상대를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가르치려 들고 결국 '거봐, 내 말이 맞았지?'라는 말을 하기 위해 다가오니까. 하지만 진정한 위로가 발휘하는 작은 순간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잠깐씩 짧은 위로와 조우하며 생을 스쳐 지나가자고' 작가는 말한다. 그 작은 시간들로 비로소 삶을 이어나갈 수 있기에.
사람들 앞에서 울면 그들은 너를 달래주려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깔보기 시작하는 거야.
여섯 살 그때, 엄마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와 둘만 있을 때는 얼마든지 울어도 돼,
그건 네가 몇 살이 되든 상관없어.
백 살 때도 괜찮아.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연우의 솔직함과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스스로를 위한 선택들이 부러웠다. 연우를 포함한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슬픔을 알아주고 괜찮다 말해준다. 혼자만의 고독을 품은 채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그 인물들의 세계를 바라보며 나는 나의 소년을 떠올린다. 스스로에게 결핍을 느끼고 나로부터 벗어나 좀 더 가치 있고 위대한 무엇인가에 도달하려 했던 그때, 해야 할 것 같은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좇고 수시로 절망하고 낙담하며 나를 스스로 소외시키던 그때를. 그때의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는걸, 나를 미워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토록 간절하게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는걸, 아직 나의 소년은 끝나지 않았다는 걸 이 소설을 읽으며 알게 된다. 그럼으로 다시 한 번 위로받는 것이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혹은 '나 진짜로 괜찮아(I'm truly fine)'이라 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