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문학동네
이제껏 당신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혹은 어떠한 양식의 조직생활에서 불편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 책에서 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극본을 쓰면서 화제를 몰고있는 문유석은 현직 부장 판사로, 스스로를 합리적 개인주의자라 선언하고 있다. 저자 소개란을 보면 이 책이 견지한 스탠스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 한 문장을 소개해본다.
요령껏 사회생활을 잘해나가는 편이지만
잔을 돌려가며 왁자지껄 먹고 마시는 회식자리를 힘들어하고,
눈치와 겉치레를 중요시하는 한국의 집단주의적 문화가
한국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단순히 고독을 좋아하는, 사회 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염세주의, 냉소주의를 옹호하는 책이 아니다. 이 사회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모습을 제시하고 그 모습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합리적 개인주의자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자신의 견해를 듬뿍 담은 짧은 여러편의 에세이로 책은 구성되어 있다.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집단주의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여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지 자신의 직업적 · 사회적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으며 주요 논점에서 조금은 벗어난, 그러나 유익한 사변적인 에세이도 몇 편 포함하고 있다. 거기에 문유석의 재기 발랄하고 통쾌한 문체와 판사로서의 구체적이고 따뜻한 시선은 덤이다.
글쓴이가 미리 밝히고 있다시피 '낡은 일기장을 꺼내 읽어볼 때처럼 거칠고 두서없는 느낌이나 생각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에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명료하고 동시에 핵심적인 것이다. 좋은 책이 그렇듯, 저자는 본인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그 이야기는 다른 독자나 사회 일부에 적용될 수 있다. 페이스북의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은 사례는 「개인주의자 선언」이 지적하는 한국 집단문화의 포화 속에서 목소리를 내고자하는 개인주의자, 헤이터들의 돌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유석이 꿈꾸는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란, 단순히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로서의 사회가 아니라, 싫은 걸 싫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는 만큼 타인의 자유를 존중 할 수 있는 사회, 우리 사회의 테두리를 인식하고 옳지 않은 것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성숙하게 해결해나가는 자세를 겸비한 책임감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관용의 정신 서로에 대한 관심과 존중, 선한 사회를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 정신. 합리적 개인주의는 우리를 그러한 사회로 이끌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을 통해 개인주의자들에게는 공감과 후련함을,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해심과 또다른 시선이 전달될 수 있기를.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
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p.14 「인간 혐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p. 23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p.57-58 「행복도 과학이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p.279 「우리가 잃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