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캣맘 관찰일기_220512

by 정재광

일정을 마친 진이 집 앞에서 마지막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밤공기에서 까슬까슬한 냄새가 났다. 마치 아직은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처럼, 지인 캣맘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고양이가 죽어있어요."


몹시 놀란 목소리였다. 밥자리로 가는 통로에 고양이 한 마리가 가로누워 있다는 거였다. 바로 옆에 비둘기 한 마리도 같이 죽어 있다고 했다. 캣맘님은 차마 사체를 만지지 못해 어느 고양이인지 확인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다 연락을 주신 거였다.


밥자리 근처였고 비둘기가 함께 죽어 있었기 때문에 먼저 독극물 섭취로 인한 사망이 의심스러웠다. 진은 또 다른 캣맘님께 이런 경우 바로 땅에 묻어주지 말고 조치를 취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바로 그분께 연락해 들은 내용을 전달했다.


일단 밥자리에 사료가 아닌 물질이 있는지 확인하고, 또 사체에 구토나 변의 흔적이 있는지, 또 다른 훼손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런 게 있다면 사체는 봉지나 박스에 싸서 동물병원으로 데려가고, 학대 의심 사건으로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진이 바로 현장으로 가보려고 했는데, 감사하게도 가까이 계신 다른 이웃 캣맘님이 금방 와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다행히, 사체가 깨끗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밥자리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고양이 이름은 '로잔이'라고 했다. 계속 그 자리에서 만나며 살피던 아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바로 옆에 비둘기까지.


로잔이는 귀가 안 들리는 아이였다고 한다. 가까이서 소리를 내도 듣지 못했고, 야옹 하는 시늉만 할뿐 자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는 게 캣맘님 설명이었다. 아마도 비둘기를 사냥하며 흥분도가 올라간 상태에서 뭔가 다른 자극에 놀라면서 급사한 게 아닐까 하고 우리는 추정했다. 나이도 꽤 있는 아이였다.


워낙 사례를 자주 접하다 보니, 이런 소식을 들으면 학대 의심부터 하게 된다. 죽음을 애도하고 보호자의 놀란 마음을 살피는 동시에, 분노할 준비까지 되어버리는 게 서글프다. 이번이 그런 케이스가 아니라는 게 감사할 정도였다.


밤중에 아연한 장면을 만난 캣맘님에게 연대의 손길이 있었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매일같이 새로 생기는 변수와 사건을 혼자서 처리하기에 어려운 세계다. 진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이번에도 함께 마음 써주는 이웃 캣맘님들이 있었다는 게 감사하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로잔이는 그렇게 소리 없이 돌아가게 되었다. 불편한 몸으로 험한 길 생활을 견디며 몇 년간 잘 자라준 친구에게 나도 잠시 고개를 숙였다. 직접 보고 들은 사이는 아니지만 그 이름을 기억해주고 싶다. 따듯한 울림 속에서 편히 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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