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의 『입술을 열면』 낭독회에서 나를 줍다
때로 한 사람을 잃는다는 건 모든 사람을 잃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게 사람을 잃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는 일이 누구에게나 한 번은 찾아온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만의 일인 것만 같았고 내 문제인 것 같았다. 사람 사이에 나를 위치하는 법을 몰라 그저 흔들리기만 하던 시간이 길었다. 유일한 글쓰기 동료였던 한 친구는 거듭 시를 권했다. 시의 힘을 믿었거나 말았거나, 그때의 나는 손에 닿아만 준다면 뭐라도 붙잡고 싶었다. 잡은 손에 간신히 힘을 주어 그날 밤 낭독회까지 갈 수 있었다. 겨울이 잦아들고 있었다.
태풍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부부는 한평생 지혜를 향해 간다//늙은 남자가 늙어가는 남자의 굽은 등을 감쌀 때/자연의 파도란 평등하다
- <노부부> 중에서
낮은 조명 아래 사람들이 품마다 시집을 안고 있었다. 시인은 서점 안을 거닐며 일찍 온 손님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따듯한 곳에서도 내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아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까무룩 앉아있다가 첫 낭독에서 곧장 얻어맞고 말았다. 노부부의 이미지에서 손쉽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린 나는, 그 자리에 두 남자를 자리 잡게 한 시의 태연함에 할 말을 잃었다. '소년이 소녀에게'가 아니라 '소년이 소년에게'.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퀴어에 시간이 얹어진 그 장면에 조금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아이는 작고 가볍다. 오래지 않아서…그러나 아이의 시간은 누구보다 오래된 것과 가까워서 아이는 저절로 멀어진 것과 가까워진다.…엄마는 어린 딸의 손가락을 보았다. 끝까지 가보려고 했으나 그곳은 아득하고 오래돼서 엄마의 눈은 끝내 어린 딸의 손가락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어린 딸이 다시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새로운 곳으로 가요. 엄마.
- <유구> 중에서
어쩌면 사람이란 시간의 이름, 혹은 시간의 단위 일지 모른다. 아이는 아이만큼 어른은 어른만큼, 어머니는 어머니만큼 그 만한 속성을 갖출 때까지 시간이 쌓인 모양이 그 사람을 이루는 게 아닐까. 태초에 빛이 있었다면, 얼마큼의 빛이 사그라들고 그 틈새를 어둠이 채운 결정체가 그 사람이겠지. 그렇다고 할 때 관계라는 건 시간을 주고받는다는 뜻일 테다. 자기가 지금까지 쌓아온 빛과 어둠을, 즉 에너지를 주고받는 일을 우리는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배 형식(자아가 세계를 동일화한다)이 아니라, 관계 형식(대상끼리의 관계에서 주체가 생겨난다)이다.
- 권혁웅 『시론』
『입술을 열면』의 시는 마치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시간을 나누어 가진 뒤에 기억을 남기는 것처럼, 계속해서 만나고 헤어지고 있었다. 하나의 장면이 나타나고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두 장면 이상이 겹쳐지고 있었다. 장면과 장면이 디졸브처럼 만나고 헤어질 때면 합쳐진 잔상이 이미지로 남았다. 잘 편집된 영화나 영상미술을 보는 것 같은 경험. 시집의 카메라워크를 따라가는 동안에 친구와 나는 각자의 어떤 만남을 떠올리며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서로 다른 시에서 한 번씩 고개를 숙이는 동안 옆 사람의 눈물에 대해 묻지 않았다.
미래에 우리는 한 택시에 합승할 수 있고/떨어진 은빛 동전을 줍기 위해 같은 손을 내밀 수 있고//엄마 친구야/아빠 친구야//물을 수 있고/말할 수 있다…잘 자라주렴/너만은 아니지만 너로도 미래가 온단다
- <미래가 온다> 중에서
그때까지 나는 시를 믿지 않았다는 걸 낭독이 이어질수록 깨닫게 되었다. 말로 쌓은 세계는, 그런 관계는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마는데 시라고 별 수 있을까. 그런데 마치 내 사정을 아는 것처럼 사람을, 시간을, 관계를 짚어주는 시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풀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너만은 아니지만 너로도 미래가 온다고, 시가 정확하게 말해주었을 때, 나는 바깥을 맴돌던 시선을 내게로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시간과 시간이 오가는 일이었다. 서로 다른 에너지 사이에 낙차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두었던 장면이 지나갔다고 엉엉 울면서 영화가 끝난 것처럼 굴 필요는 없었다. 멈출 이유가 없었다.
달이 차고, 다시 겨울이 잦아들고 있었다. 시를 따라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가만한 미래가 오고 있었다.
말해버렸다/입술은 행동할 수 있다//사람이라는/진실은 이토록 정처 없이 희망차고
- <열여섯번째 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