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중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압주ABZU>가 선사하는 내면의 바다

by 정재광

감사하게도 유년의 몇 해를 슈퍼패미콤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탐험과 여행의 시간이었다. 방에 앉은 채로 각종 전장과 우주를 누볐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돼있던 그때의 게임들에 덤비고 깨지면서 참 많이도 배웠다. 그 뒤 플레이스테이션4로 다시 콘솔을 접하기까지 1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얼마나 발전했을까? 이번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벅찬 마음으로 지도를 펼쳤다.


그때 처음 마주한 게임이 <압주>(ABZU)였다. 좀 이상했다.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미션이 주어지지도 않았고, 적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바다에 있었다. 햇살이 아름답게 비치는 수면 아래로 물고기 떼가 유영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발을 굴려 헤엄치는 일뿐이었다. 천천히 앞으로 뒤로 움직여 보았다.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물속에서 방향을 잡아가며 조금씩 아래로 더 내려가 보았다.


maxresdefault.jpg Abzu (Giant Squid Studios)


그제야 <압주>의 목소리를 조금 들을 수 있었다. 이 게임은 나를 시험하거나 고난에 빠뜨리려는 게 아니었다. 형형색색의 바다식물과 해양 생명체로 둘러싸인 심해에 나를 놓아주고 있었다. 한참 물고기들과 인사하고 바닥의 모래를 흩날리며 떠돌다가 처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를 찾아냈다. 그건 명상이었다.


게임에서 명상이라니.


자연에서 느끼는 평온감에는 일말의 공포가 포함되어 있다. 울창한 산중이나 광활한 우주, 그리고 까마득한 심해에서 느껴지는 아득함. 압도적인 스케일이 주는 경이로움은 존재의 미약함을 실감하게 한다. 나는 압주의 바다를 여행하다 공포감을 느낄 때면 명상을 했다. 가만히 앉아 바다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음악 속에 잠기다가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게 언제 이런 고요가 허락되었었는지 생각하면 잠시 먹먹해지기도 했다.


384190_screenshots_20160804142434_1.jpg Abzu (Giant Squid Studios)


사실 감상만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석상과 유적을 탐험하다 보면 오염된 바다를 정화하거나 갇혀있던 어종을 -나도 모르게- 해방하게 되고, 그게 나를 어떤 임무로 이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고대 벽화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든든한 동료를 얻기도 한다. 'abzu'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지혜의 바다, 혹은 태고의 바다를 의미한다는 걸 짚고 보면, 내 역할이 신화 속 구원자인 것 같기도 하다.


최근까지도 게임의 유해성과 폭력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지만, <압주>를 눈앞에 두고 보면 그런 다툼은 무색해진다. 게임은 무엇보다 체험의 예술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바다와 생명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라면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에 대해서도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압주의 바다를 정화하는 일은 나의 내면을 씻어내는 일이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람과 더 깊은 바다로 가고 싶다. 방해받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한 마디의 공간을 저마다 가졌으면 좋겠다. 고요와 명상 속에서 내면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오염되지 않은 자기 모습으로 사람들과 만났으면 좋겠다. 게임을 통해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함께 체험하고 싶다.


ss_d47acc2f4600310d41d966a55752948692891eaa.1920x1080.jpg Abzu (Giant Squid Stu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