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운 『감은 눈이 내 얼굴을』
안태운『감은 눈이 내 얼굴을』 (2016, 민음사)
‘눈을 감아야 보이는 법이니라’ 하는 오래된 말장난이 있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면이 보인다. 빛이 차단되었을 뿐 눈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감은 눈 안의 세계와 눈 밖의 세계는 존재의 유무만큼이나 큰 차이를 가진 것 같지만 사실 –가시광선에 기대어 구축한 나의 인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만약 빛의 세계가 완전하지 않다고, 혹은 실패했다고 판단한 주체가 있다면 그는 눈을 감고 세계를 바라보려 시도할 것이다. 그것은 불완전한 이 세계를 복원하고 재구성할, 그리하여 구원할 일말의 가능성을 진단해보는 일이다.
안태운의 시는 ‘거의 늘’ 현재형으로 나열/반복된다. 그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 있는 건 줄곧 어떤 풍경 혹은 시야다. (때문에 이 진술들은 마치 증언처럼 보인다.) 화자의 언술을 통해 파편화된 풍경의 조각을 시인과 독자가 각자 나누어가진 다음, 서로의 그것을 함께 조망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들을 보기 위해서 잠에 들거나 죽거나 죽은 자의 시선을 경유하는 등의 작업이 반복된다. 어둠과 죽음을 통과하는 이 시선의 방향은 –마치 감은 눈 밖의 세계에서 온전히 빛을 반사해내는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죽음의 피사체를 바라보고 있는 주체/시인/독자에게로 향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빛으로 지어진 세계를 거부하고 희망을 찾아 다다른 자리에 죽음과 대면한 자신이 서 있을 때, 이 당혹감과 부끄러움 혹은 혐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나와 너,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잠과 꿈을 오가는 이 변증법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장은정은 해설의 말미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의 원리로 직조하는 이 대담함이 그 자신에게까지 일관되도록 하기 위해 안태운의 시는 자신을 증오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증오를 통해 스스로 감은 눈을 찢고 그로 인해 “모른 척해 왔던 것을 남김없이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태운 시의 이러한 자기 증오는 목적을 위해 희생적으로 택해진 것이라기보다는 애초에 필연적이었던 것 같다. 눈을 감고 세계를 바라보려는 시도 자체가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지 않고는 성립되기 힘든 일이다. 어쩌면 모든 것은 자기배반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 죽음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돌파해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을 죽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