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 고양이들

캣맘 관찰일기_220331

by 정재광

대 박 사 건


진은 아직도 이사를 완료 못하고 이사갈 집과 살던 집, 그리고 임보처까지 오가며 세 집 살림을 하는 중이다. 몸이 열 개여도 잠 잘 시간이 부족한 참인데, 웬 일로 잠시 시간이 떴을까. 이사갈 집에서 구슬이를 돌보고 나오던 길에 오래된 상가가 눈에 들어 혹시 저렴하게 임보처로 쓸 공간이 있을까 싶어 골목으로 잠깐 들어가 봤단다. 부동산에 전화를 하며 근처에 있는 건물들을 둘러보던 진의 눈 앞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버려진 상가 건물 앞에 고양이 십여 마리가 모여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아무도 귀 커팅이 되어있지 않은, 즉 중성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주변에 밥그릇 몇 개와 겨울집도 보였다. 누군가 돌보기는 한다는 것인데 중성화가 아무도 돼있지 않다는 건 꽤 심각해보였다. 그대로 두면 개체수가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날 일이었다. 임신한 것처럼 배가 부풀어오른 아이들도 있었다.


다행히 바로 옆 건물에 사는 분을 뵙게 되어 여쭈어 보니, 누군가 오며가며 밥을 주기는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재개발 예정 지역이라 곧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밥을 주는 분도 거처를 옮기게 될 터인데, 그러면 이 고양이들은 다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셨다. 그분 말씀으로는 거기서 지내는 고양이 숫자가 족히 서른은 된다고... 그야말로 놀랄 놀 자였다.


일단 장소를 떠났다가 나도 합류해서 다시 그곳을 찾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겨울집의 숫자가 꽤 많았다. 여기저기 구석으로 설치해둔 걸 다 합하면 스무 개는 되어 보였다. 어차피 폐가나 마찬가지인 곳이라 딱히 깨끗하게 관리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겨울집 하나하나 스티로폼이나 단열재를 사용해 싸맨 것이 손을 꽤 들인 티가 났다. 고양이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밥그릇도 꽤 너르게 분포해서 놓여있었다. 사람의 손이 닿은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나 많은 고양이가 한 장소에 모여있는 광경은 앞뒤 사정을 떠나 그저 아연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성화가 시급했다. 진은 TNR 담당 병원에 전화를 돌려 수술 가능 날짜를 확인했다. 밥을 주시던 분에게는 조치가 시급하다는 것을 당부하며 연락처를 적어 남겨두었다. 남은 밥이 하나도 없었기에 급하게 사간 그릇에다 사료랑 습식을 섞어 여기저기 나눠도 주었다. 일단 돌보던 분의 연락을 기다려보겠지만, 아마 당장 내일부터라도 구조 및 중성화에 돌입하게 될 것 같다.


진은 바로 며칠 전에도 재개발지역에 노출된 고양이들을 구조 지원하러 왕복 두 시간여를 다녔는데, 이건 등잔 밑이 아니라 바로 발 아래도 못 본 꼴이었다. 그곳보다 훨씬 많은 고양이들이 역시나 재개발구역인 진의 집 바로 근처에 있었으니. 진이 이사갈 집도 최근에 개발되며 새 건물이 많이 올라간 곳이다. 어쩌면 그곳이 허물어지면서 내몰린 고양이들이 모여 지내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개중에는 대장냥이로 보이는 턱이 두껍고 머리가 큰 고양이들도 두엇 있었다. 보통 그런 아이가 있으면 다른 고양이들은 눈치를 보며 주변으로 숨어지내거나, 영역 다툼을 하느라 으르렁대다 흩어졌다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그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바로 인근에 몰려 있었다. 녀석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밥을 주는 분은 누구며 어떤 마음으로 이 많은 친구들을 돌보고 계셨던 걸까. 이 친구들을 무사히 수술하고 안전한 거처로 옮길 수 있을까. 또 커다란 문이 열리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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