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천국(?)

캣맘 관찰일기_220402

by 정재광

진은 아침부터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동네 공터로 나섰다. 며칠전에 도와드린 다른 캣맘님의 TNR이 무사히 진행되어 고양이를 방사하는 데에 나가본 것이다. 중성화가 꼭 필요하다는 데에는 고민 끝에 확신에 가깝게 마음을 먹었지만, 아직까지도 아이들을 잡아가고 수술하고 하는 일이 유쾌하지만은 않다고 진은 거듭 말한다. 방사 때 아이들이 살던 곳에 안전하게 도착해 다시 밥 먹는 모습이라도 보는 게 그나마 마음을 다독이는 일 같다.


단지내에 급식소 이동 요청이 있어 그것도 옮겨드리고, 장도 봐서 집에 들어가 점심을 차려놓고 다시 나왔는데 심지어 그 사이에 임보처 공간을 또 알아보러 갔었단다. 그런데 진한테 무슨 고양이 자석이라도 붙은 것인지, 알아보러 간 그 건물 바로 앞에 작은 고양이와 밥그릇이 있었다고 한다. 하도 이런 일이 많으니 이제는 나도 그러려니 한다. 그 건물 카페 사장님 말씀으로는 여섯 마리 정도가 오가면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중성화된 친구는 아무도 없다고. 다음주에 진이 할 일이 하나 추가된 셈이다. 열혈 개인활동가에게 일복이 터졌다.


그런 뒤에야, 나도 합류해서 며칠째 방문 중인 폐상가로 다시 향했다. 아직 중성화 해야 할 친구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아침에 그곳에서 케어를 하시던 한 분에게서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중성화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포획이 어려웠다고. 와중에 몸이 아픈 아이는 어떻게 구조해서 케어 중이시라고 한다. 일단 우리는 하던 대로 그곳 아이들 중성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여느 때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나와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첫날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주었던 -이 구역 대장냥이가 확실한- 고등어가 돋자리 위에서 따뜻한 단잠을 자고 있었다. 한때는 여기서 껌 좀 씹었던 듯 하관이 선명하게 발달한 치즈도 어김없이 나와있었다. 구내염 때문인지 몸이 퍽 말라있어 얼른 치료가 필요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우리가 주는 밥은 잘 씹어삼키고 있었다.


그동안 저 아이는 꼭 수술해야겠다며 지켜보던 삼색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없고 처음 보는 삼색이 한 마리가 또 있었다. '삼색이=여자아이=TNR 1순위' 이곳은 어쩜 이리 삼색이가 많을까... 우여곡절 끝에 삼색이 한 친구를 더 구조할 수 있었다. 큰 무리 없이 진행 중이라 마음을 놓고 싶은데, 오늘의 대박사건은 지금부터다.


이제는 서로 얼굴이 익은 산불감시원분께서 중간에 지나가시며 아주 알찬 정보(...)를 주셨다. 우리가 있던 곳은 동네의 초입이었는데, 길 따라 올라가면 이 마을에 길고양이들 일고여덟 마리씩 모여 있는 곳이 몇 군데는 더 있다는 것이었다. 놀람 반 걱정 반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니, 고즈넉한 전원주택이 여러 채 보였고 몇몇 분들이 텃밭을 일구고 계셨다. 이런 마을 정도는 도시 근교에 있어도 참 좋을 텐데 굳이 재개발을 해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어느 집 나무 대문이 열린 틈으로 빼꼼 하고 작은 고양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가 차를 세우고 내리니 아주 한 식구가 쪼르르 달려나왔다. 다섯 마리 중에 한 마리 빼고 죄다 삼색이였다, 아이고. 녀석들에게 밥을 챙겨주던 주민분을 금방 뵈었다. 이곳에도 여섯 마리 정도가 있고, 잡을 방법을 몰라 아무도 중성화를 못했다고 하셨다. 처음 고개를 내밀었던 제일 작은 고양이가 작년 가을에 난 아이인데 셋 정도 있던 형제들은 이제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 엄마로 추정되는 고양이는 출산을 세 번이나 했다고... 어딜 가나 사연 없는 고양이가 없다.


오늘은 정말 날을 제대로 만난 것 같았다. 거기서 몇 십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골목에서 어린 고양이 두 마리를 또 만난 것이었다. 이번에는 둘 다 치즈였다. 녀석들은 낯을 가리는 기색도 없이 잰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사람 손을 타는 아이들 같다 했더니만, 밥을 챙겨주던 주민분을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맙소사, 여기도 여덟 마리나 있다고 하셨다.

'땅콩이'와 '호피'. 처음으로 이름이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진 왈, "여자앤데 왜 땅콩이지?" 어..음..아..그러게..

가여워서 밥을 주다보니 거의 마당냥이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역시나 잡을 방법을 몰라 아무도 중성화를 못했다는 말씀. 그중에 2,3개월 밖에 안 된 아이가 아프다고 하셔서 우선 병원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아이를 직접 안아 이동장에 넣어주시는 손이 퍽 조심스러웠다. "이제 우리는 다 이사 갈 수밖에 없는데 얘네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손을 타는 아이들이라 입양 가능성을 말씀드렸더니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며 손을 모아쥐셨다.


이 동네는 어떤 의미에서 고양이들이 살기 너무 좋은 곳이다. 소수의 주민분들이 다들 어여삐 대해주시고, 오가는 차량과 인파는 많지 않으며, 뛰어놀 수 있는 산과 들판이 드넓다. 무한정 개체수를 늘린 순 없으니 중성화는 필요하겠지만, 충분히 사람과 고양이가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다. 그러니까, 재개발만 없으면 말이다. 연말까지 버틴다는 분들도 있다는데 어쨌거나 예고된 날짜는 올 9월이라고 한다. 우리가 만난 주민분들은 하나같이 '쫒겨난다'는 표현을 쓰셨다.


TNR 담당 병원 포획실장님과 이야기가 잘 되어, 진은 내일 실장님과 함께 틀 12개를 챙겨서 다시 이 동네로 출동한다. 고양이들 돌봐주시던 주민분들도 모두 동의를 너머 부탁을 해주셨고, 가능한 대로 모두 중성화 해주기로 했다.


+덧

병원에 간 아이는 호흡기 증상이 있었는데 다행히 범백은 아니었다. 허피스 바이러스로 추정되어 잠시 입원하면서 치료할 예정이다. 첫인상 때와는 달리 씩씩하게 울음소리도 잘 내고 움직임도 활발했다. 품종묘와 믹스인 듯 털은 치즈빛인데 갈기처럼 멋진 장모를 자랑하는 녀석이다. 우리는 <라이온 킹>에 나오는 심바의 아버지 이름을 빌려 '무파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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