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와 왓슨

캣맘 관찰일기_220406

by 정재광

오랜만에 삼색마을로 동행했다. 나는 며칠 만이지만 진은 처음 삼색마을 발견한 뒤로 매일 고양이들을 살피고 있다. 다른 병원 실장님도 들러주고 계시고 다들 기회가 닿는 대로 아이들을 포획하고 있다. 이제 내일쯤이면 이 마을에서 처음 TNR 한 친구들 방사도 하게 될 것 같다. 고양이 돌보시던 마을 주민분들 숙원이었는데 가능한 많은 친구들이 안전하게 진행되면 좋겠다.


마을 초입에 도착하자마자 삼색이를 만났는데 배가 홀쭉해 보여 당황했다. 계속 TNR 대상으로 생각하던 친구였는데, 혹시 그 사이 출산을 한 걸까?! 만약 그렇다면 수유를 해야 하니 이 친구 포획도 못하고, 새끼를 안전도 신경 써야 하고 또... 당연히 개체수가 늘어난 거니 여러 가지로 곤란한 일이 된다. 생명의 탄생을 축복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서글프지만 TNR의 세계에선 이것이 또한 현실이다. (동시에 머릿속에선 귀여운 새끼들 모습이 상상되는 인지부조화..)


다행히 상상은 거기까지였다. 혹시 새끼들이 있을까 싶은 곳들을 찾아보는 와중에 예전에 찍어둔 영상과 비교해보니 녀석의 배는 거의 비슷했다. 진이 아마 진짜로 배가 좀 볼록했던 다른 친구와 헷갈렸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제 8년째 고양이와 같이 사는 중이지만, 사실 길고양이들 만나면 아직도 구분이 잘 안 간다. 진은 지난 1년 동안 수백 마리는 만났을 테고, 삼색마을에서도 며칠간 4,50마리를 마주하고 있는데 그 친구들 특징을 다 기억하는 것만 같다.


약 먹어야 하는 치즈가 바로 앞에 보여서 위치를 바꿔가며 두어 번 주었더니 잘 먹었다. 구내염이 아직 심하지는 않은 건지, 그릇을 싹 비우고 제법 그루밍까지 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매일 저렇게 잘 먹어주면 병원까지는 안 가도 될지 모르는데!

매일 가장 먼저 반겨주는 노랑이. 약밥도 잘 먹고 아주 예쁘다. 슬슬 이름이 필요하겠다.

나머지 밥그릇은 일단 모두 치워두었다. 저녁에 다른 병원 포획실장님이 오셔서 가능한 대로 데려가실 예정이었다. 아이들이 배가 부르면 틀에 잘 안 들어갈 수 있으니까. 대강 정리를 하고 나는 출발 준비를 하는데, 트렁크 뒤를 보니 진이 어느새 포획틀을 준비하고 계셨다. "아니, 저기 바로 앞에 삼색이가 와있는데 데려가야지." 해맑게 웃는 진의 얼굴.


즈기요.. 오늘 분명히 약만 주고 간다고 해쓸튼드...


내가 진을 도와 길고양이 돌봄을 하다 보면 '아주아주 가끔' 힘든 부분이 이런 것이다. 그녀는 초단위로 계획이 바뀐다. '요기만 하자, 저것만 하고 가자' 했더라도 현장의 변수는 언제나 무궁무진하다. 상황에 맞게 척척 계획을 변경해서 뭐든지 해내는 진을 좇아가다 보면 자꾸만 내 가랑이가 찢어진다. 홈즈의 두뇌 회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왓슨의 고뇌 같은 거라고 해두자. 나는 내 역할이 있으니까.


가까스로 삼색마을을 벗어나, 이사 갈 집에 들러 구슬이도 만나고 임보처에도 며칠 만에 가보았다. 새 입소자인 땅콩이와 제니도 각각 격리장에서 잘 적응 중이었다. 문제는 땅콩이가 아직 자주 운다는 것이고, 더 문제는 제니가 거기에 호응을 해준다는 것. 작고 귀여운 울음이지만 선창에 후창에 하모니까지 만들어 버리니 옆집에 들리진 않을지, 다른 고양이들은 괜찮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확연히 줄어서, 두 녀석에게 잘 부탁한다며 연신 쓰다듬어주고 나왔다.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느라 고양이들도, 진과 캣맘들도, 여러분도, 그리고 왓슨도 다들 고생 많았다. 편안한 밤이기를.

밥 먹을 때 제일 조용한 땅콩이
이 친구가 제니. 블핑의 그 제니에서 따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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