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시대를 지나, 질문하는 어른으로 살아가기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무식한데 용감한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뜻일 것이다.나도 똑똑하진 않으니, 이 범주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다.
가장 위험한 군인은 두려움이 없는 병사다. 그는 전사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실패해 본 적 없는 사업가도 그렇다. 그의 성공 경험은 스스로 파놓은 함정이 될 수 있다. 다른 이의 찬사에 취한 유명인 역시, 그 환호를 좇다 허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믿음이 강한 종교인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까지도 순교의 길로 끌고 갈 수 있다.
이 땅의 교회여, 성도들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믿음의 선배들도 의심하고, 회의했다. 죽음을 앞둔 세례 요한도 “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라며 물었고, 예수조차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며 절규했다.
오히려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자녀에게 그대로 강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길이 앞으로도 평탄할 거라는 보장은 없고, 우리는 다른 이의 인생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할 자격도 없다. 진짜 어른은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언을 아끼기도 한다. 겸손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조언이 과연 옳은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된 어른은 성큼성큼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다. 어두운 길을 더듬으며, 신중히 한 걸음씩 내딛는 사람이다. 그는 느낌표(!)보다 물음표(?)를 안고 산다. 끊임없이 묻는다.
“내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그 판단은 옳은 일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질문을 던진다.
“나의 동기는 무엇인가.”
그 질문 앞에서 비로소 어른은 진짜 어른이 된다.
지금까지 나는, 참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쉰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 한 사람의 사유에 불과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른의 길은 아직도 길게, 넓게, 그리고 깊게 펼쳐져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 길 앞에서 겸허히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신발끈을 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