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

내 흠집을 덮어준 스티커

by 서 경

사람마다 상처를 이겨내는 법은 다양하다. 충분히 힘들어하다 놓아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기어코 외면하려 애쓰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전자에도, 후자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흠집 난 부분에 예쁜 스티커를 붙여 가려버리듯, 난 내 상처에 좋은 기억을 붙여 덮어버린다.




내가 내 나이를 한 손으로 다 셀 수 있었을 때, 난 유독 물건들을 잘 망가트렸다. 소위 말해 '매직 핸드' 그 자체였다. (건드리는 족족 물건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요즘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뭔가를 가지고 놀 때마다 눈에 띄는 흠집 하나 내지 않고는 못 배겼다. 물건을 험하게 대하던 나는 모순되게도 물건에 대한 애정과 집착도 심했다. 물건의 흠에 무척이나 예민하게 굴었다. 필통에 얇은 스크래치 한 줄이 가도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망가진 물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온 얼굴을 구기고 있을 때, 엄마는 방에서 스티커 꾸러미들을 가져오시곤 했다.


"우리 이거 같이 꾸며볼까?"


엄마는 흠집이 잘 가져지도록 흠집의 크기에 알맞은 스티커를 골라 붙이셨다. 반짝거리고 폭신한 스티커들을 한참 붙이다 보면 엄마의 위로는 어느새 재밌는 놀이가 되어있었다. 물건에 생겨난 예쁜 반창고들은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물건을 더 빛나게 해주고 있었다.


두 손을 다 쓰고도 나이를 다 못 세기 시작한 후로, 물건에는 더 이상 스티커를 붙이지 않았다. 물건에 적당히 정을 주는 연습을 해온 덕이었다. 대신 그때부터는 내 마음에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옷도 채 다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숨이 차게 속상했던 일들을 쏟아내던 내게, 내심 서운했던 일을 잠들기 전 이불 밖으로 슬쩍 꺼내던 내게, 엄마는 스티커를 골라주셨다. 흠이 조금은 비춰 보이더라도 나의 기억과 함께 잘 어울러질 수 있는 좋은 면이 그려진 마음을 붙여주셨다. 그 주변을 엄마가 가진 또 다른 재밌는 이야기로 꾸며주시기도 했다.


지금도 난 여전히 스티커를 붙인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내가 나에게 맞는 스티커를 골라, 나 혼자서도 붙일 수 있다. 물론 가끔은 스티커가 헤져서 떨어지기도 한다. 내가 가진 스티커만으로는 덮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파인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한 품에 쏙 들어가던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가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곤 한다. 엄만 어떤 상처도 다 덮이는 스티커를 가지고 계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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