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of Vision, Friend of Korea
합정동에 살던 시절엔 집 근처에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산책삼아 들르곤 했었다. 묘비에 새겨진 몇 글자를 통해 다양한 인생들을 만나다 보면 이어령 선생님께서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홀트... 이 땅에 뼈를 묻은 많은 선각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발길을 끈 이름은 언제나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였다.
호머 헐버트의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한 묘비 Man of Vision, Friend of Korea
이보다 더 멋진 묘비가 또 있을까?
1886년 여름, 망해가는 조선 땅에 들어온 23세의 청년으로 들어와 1949년 여름에 그토록 염원하던 땅에다시 돌아와 영면하기까지 평생을 이 땅의 독립과 가치를 발굴하고 알리는데 헌신한 은인,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님께 대한 무한한 감사를 늘 빚진 마음으로 간직하고 산다.
우리도 몰랐던 아니 인정해주지 않았던 한글의 가치를 먼저 발견하고 온세상에 알려준 헐버트 박사님은 "한글과 견줄 수 있는 문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정확하게 원문으로 옮기면 "Korean alphabet scarcely has its equal in the world for simplicity and phonetic power." 즉 "음운학적인 능력과 단순성에 있어서 한글과 견줄 수 있는 문자는 이 세상에 없다."는 뜻으로 헐버트 박사는 이미 19세기말에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선도할 한글의 가치를 인정한 선각자였던 것이다.
오늘은 헐버트 박사님께서 1891년에 펴내신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다시 읽으며 그 뜻을 기려본다. 몇년 전 내 손에 들어온 '사민필지'의 영인본 사본이 헤어질 정도로 들고 다니며 틈틈이 읽어 왔으나 어떻게 한글을 깨친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대 청년이 그렇게 완벽하게 한글의 원리를 이해하고 음운학적으로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었는지 경이롭다.
나의 와이셔츠 왼쪽 가슴에 달고 있던 헐버트 박사님을 추모하는 리본을 떼어 책꽂이에 둔다. 외국인도 이렇게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건만 어쩌자고 스스로 일제의 식민지 노예가 되고싶어서 안달이 난 친일파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큰 소리치는 시대로 역행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 대한민국의 완전한 독립과 광복을 위해 또렷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요인 아리랑을 최초로 서양의 음계에 맞게 채보한 사람도 호머 헐버트 박사였다고 한다. 오늘 추모식에서는 특별히 역사청소년합창단이 '홀로 아리랑'을 완창하여 그 뜻을 기렸다. 너무나 아름답고 감격스러웠던 공연실황을 담아 현장에서 올려보았다.
https://youtu.be/7kVHMQWF1gc?si=vapEKK8uBXscuhM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