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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랄드 헨덴을 기리며

Remembering Harald Henden

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대한 인간과 함께 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는 경우가 있다. 노르웨이 최대의 일간지 VG를 대표하는 사진기자였던 고 하랄드 헨덴(Harald Henden)이 그렇다. 지금까지 VG의 한국 코디네이터(fixer)로 몇개의 프로젝트들을 수행해왔는데 하랄드는 그 세번째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취재때 만났다. 바이킹 왕의 이름을 가진 이 건장한 사나이는 과묵하지만 진실을 궤뚫는 커다란 눈으로 힘있게 말하는듯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겉으로 드러난 평창동계올림픽의 모습보다는 이 그 뒤에 감춰져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포착해내려고 애쓰던 그와 동행한 1주일이 이젠 아득한 전설이 되어버렸다.


하랄드는 주로 분쟁중인 위험지역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종군기자여서 늘 그의 안위가 걱정되었지만 가끔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을 알려주고 내게 이런 저런 메시지를 남겨주기도 해서 친구로서의 인연을 이어왔었다. 그가 지난해 여름에 팔레스타인에서 취재중인 것을 확인한 것이 마지막이었고 그 후로는 내가 페이스북을 덮고 지내느라 소식을 듣지 못했었는데 어쩐지 계속해서 마음이 쓰이던 차였다. 그러다가 지난 7월 노르웨이 출장중에 문득 가판대에서 그의 얼굴이 1면에 나와있는 VG를 발견하고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하랄드의 이름 밑에 (1960-2024)라고 써있는 것을 보고 이 것이 부고임을 알았다. 바로 그 날 아침에 64세를 일기로 하랄드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렇게 황망할 수가 없었다. 난 설마 그가 팔레스타인 취재중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가 되었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그가 취재중에 건강이 안좋아져서 일시 귀국하여 검사를 해보니 말기암임을 발견하고 뒤늦은 투병생활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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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4일자 VG는 전면을 특집으로 할애하여 한 위대한 인간이자 사진기자였던 하랄드 헨덴에게 바쳤다. 그가 발로 뛰며 남긴 사진들은 역사의 일부가 되어 길이길이 남았고, 노르웨이 국왕은 그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함으로써 존경을 표했다.

하랄드가 남긴 사진집 '인간의 눈' 표지엔 쑥대밭이 된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거리에서 취재중인 그의 모습이 담겨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남기지 않은 그는 이 책의 모든 수익금을 '국경없는 의사회'에 기부했을 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재산도 기부하고 홀연히 이 땅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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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사랑한 모든 동료기자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VG 본사에 들러 그의 영정사진 앞에 편지를 한 장 남겼다.

사랑하는 하랄드,

내가 픽서로 섬겼던 노르웨이의 가장 위대한 기자를 잃은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제 더이상 전쟁도 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바랍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태원 올림


Korean Fixer for VG in 2018, photo by Harald Henden

아무런 욕심도 없이 고결한 삶을 살다가 떠난 하랄드가 찍어준 나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여기에 올려본다. 누구나 언젠가 떠나지만 그처럼 살다 갈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 가장 존엄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마침표 아닐까? 다음주 올해의 마지막 노르웨이 출장을 앞드고 하랄드를 기리며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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