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고 글 쓰기
근자감이 충만하던 시절엔 글쓰기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펜을 잡건 노트북을 펼치건 거침없이 글을 쓸 수 있었고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힘들지 않고 일사천리로 글이 끝까지 달려가곤 했었다. 여기저기 칼럼도 기고하고 블로그에 포스팅도 일상으로 올리다 보니 어느새 네이버 파워지식인도 되고 유럽부문 집필지식 1위에 오른 적도 있었다. 문제는 이젠 이 모든 것이 과거시제가 되어버린지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여행을 일상으로 하면서 사는 내게 글감은 언제나 넘쳐난다. 생각도 공부도 많이 하고 나누고픈 이야기들과 정보들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매일 펑펑 솟아난다. 그러나 그것들을 건져내서 다듬기엔 내가 너무나 게으르고 일상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익숙해져서 귀한 것마저 흔한 것들이 되어버린 것 같다. 문득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 내가 뭘 안다고 이렇게 글을 쓰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못하게 되면서 시작된 슬럼프와 함께 연재하던 칼럼들도 멈추고 사실상 글쓰기를 포기하면서 블로그도 방치한채 이따금씩 부질없는 sns에 비생산적인 소통만 하다가 이젠 그마저도 중단하고 잠수탄지 어언 1년여가 되어간다.
돌파구가 필요하다. 나의 기나긴 슬럼프를 끊어(break) 새로운 방향으로(through) 나아가게 해줄 돌파구(breakthrough)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난 주 스페인 여행중 몬세랏(Monserrat) 수도원에서 4개국어로 된 출구 방향표시를 보면서 문득 내 돌파구를 매일 글쓰기 연습을 지속하는 것으로부터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출구를 프랑스어(Sortie)와 비슷한 카탈루냐어로는 Sortida라고 쓰고, 스페인어로는 Salida라고 쓴다. 그리로 나가야 내가 살 수 있는 문이라는 뜻이렸다. 가장 익숙한 영어로는 Exit... 이렇게 쉽고 단순하고 재밌고 정보성까지 있고, 한글과 대한민국의 위상까지 보여주는 안내표지판 앞에서 들었던 참신한 생각을 또 저버린다면 나는 끝내 이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한채 나의 아까운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에너지와 열정과다인 내게 아내는 내 에너지와 열정의 10%만 쓰라고 조언한다. 아니 그 10%마저 너무 지나치니 더 힘을 빼라고 한다. 힘을 빼야 힘들지 않게 살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으리라. 힘을 빼야 힘이 되는 매우 역설적인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지난 3일처럼 앞으로도 힘 빼고 너무 잘 쓰려고 애쓰지도 않고 쉽게 쉽게 하루에 한 편씩 일기 쓰듯 글을 쓰는 연습을 딱 1년만 지속해보려 한다. 책을 쓰고 말고는 그 다음 일이다. 일단은 내가 내 글에 대해 더 편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