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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에서

Seo in Seogwipo

제주도의 남쪽에 있는데 왜 서귀포일까?

서귀포를 올 때마다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 새섬에서 산책을 하는 길에 그 대답을 얻었다. 강의용 PPT 자료를 만들면서도 주제를 Digital Nomad in Seogwipo로 정하고 열 맞추기로 내 이름 Seo Taewon을 입력하면서 농담 삼아 우린 같은 서씨라고 주장했는데 뜻밖에 아주 틀린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근거까지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도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그럴싸하니 그냥 인용해본다. 불로장생의 꿈을 가졌던 진시황(秦始皇)의 명을 받아 불로초(不老草)를 구하기 위해 중국을 떠났던 서불(徐巿)이 제주도에 들렀다가 정방폭포의 경관에 감탄하여 "서불이 여길 지나갔다(徐巿過之)"는 낙서를 남겨놓았다고 한다. 서불은 끝내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진시황이 화가 많이 났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그가 다시 중국(제주도의 서쪽)으로 돌아갔다면 이 곳에서 출항했을 것이다. 서불이 서쪽으로(西) 돌아간(歸) 포구(浦)라는 뜻의 서귀포라는 이름도 거기서 유래되었음은 물론이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 남쪽의 서귀포시까지는 넉넉 잡고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그야말로 젊은 창업자들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사격을 해주고 있는 서귀포시 스타트업베이의 글로벌센터 벽면에 그려진 단순화된 지도를 보니 제주도의 동서남북 방향과 함께 왜 서귀포여야 하는지 그 비전이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된다. 서귀포야말로 태평양과 인도양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창구 아니겠는가!


1653년 여름에 네덜란드의 상선 스페르베르(De Sperwer)이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가다가 서귀포 인근 해역(산방산 근처)에서 난파되어 거의 절반이 익사하고 36명이 겨우 살아남았는데 그 중에 그 이름도 유명한 하멜(Hendrik Hamel)이 있었다. 그가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되어 있으면서 겪은 온갖 고생담과 이방인의 눈에 비친 17세기 조선인들의 생활상 등은 그의 항해일지에 기록으로 남아있다가 나중에 '하멜 표류기'란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서귀포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역사 이야기2이다.



새섬, 섶섬, 문섬, 범섬...

아침에 숙소 인근의 새섬으로 산책을 나갔다 왔는데 이 섬에서 섬으로의 여행은 서귀포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이름까지 이쁜 섬들이 뚝뚝 한 덩어리씩 떨어져 있는 푸른 바다를 사람들이 거의 없는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만끽할 수 있었다. 새섬은 제주도 원주민들이 전통가옥을 지을 때 지붕에 꼬아서 올리는 새풀이 많이 자라는 섬이라서 새섬이라 하고, 섶섬은 숲이 우거진 섬이라서 숲섬/섶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문섬은 모기가 많아서 문(蚊)섬이라 하고, 범섬은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이라 그렇게 불려왔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함께 섬에서 섬으로의 여행을 즐기며 자꾸만 힘이 들어가려 하는 나를 내려놓아봤다.


뒤를 돌아보니 간만에 꼭대기까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한라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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