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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ora y Aqui

지금 여기

오늘 하루 종일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아오라(ahora), 아끼(aqui)


헤수스(Jesus) 기사가 배정되었을 때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지만 동명이인의 착한 기사라는 정보도 있고 일단 공항에서부터 기본적인 교신이 되길래 안심했었다. 그러나 인생같은 여행에 있어서 방심은 금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Dónde estás? (돈데 에스따스?)

어디야?
Aqui! (아끼!)

여기야!


공항에서 나와 왼쪽에 주차된 버스들 중엔 헤수스의 버스가 없었다. 헤수스의 버스는 공항을 바라보고 왼쪽 길 건너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헤수스의 여기는 공항에서 오른쪽이었고, 나의 여기는 왼쪽이었던 것이다. 나의 여기가 너의 여기가 아닐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교훈을 일정 출발 전부터 명심하고 시작한다.


헤수스는 착하긴 한데 일거수 일투족 네비에 좌표를 입력해줘야 움직일 수 있는 기사였고, 그나마 결정적인 갈림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쉬운 친구라는 것을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그 짧은 동안 파악했다. 가까운 길 돌아가기, 쉬운 길 어렵게 가기의 달인...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좌표를 찍어주고 몇시까지 그 곳에서 픽업해달라는 메시지까지 보내줬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버스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금 어디야?" 물으니 "주차장"이란다. "지금 모두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와?" 물으니 "언제?"하고 되묻는다. "지금!" 하니 "지금?" 되묻는다. "지금 여기로!!!" 말하니 그제서야 "오케이!" 한다. 헐~


한 고객이 내게 묻는다.

"아오라 아끼가 무슨 뜻이예요?"
"아오라는 스페인어로 지금, 아끼는 여기라는 뜻이예요."

새해 벽두부터 서투른 스페인어를 파파고로 돌려가며 영어 한 마디도 안통하는 기사와 소통하며 일하려니 너무나 당연해서 고민해본 적이 거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을 되새기게 된다.


올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게 살아보자. 나의 지금이 너의 지금이 아닐 수도 있음을, 나의 여기가 너의 여기가 아닐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확인 또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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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 Valenci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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