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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로 알아가는 책읽는 즐거움

스톡홀름에서 남기는 59번째 글

공부 못하는 애들이 꼭 가방만 무겁더라는 말이 있지만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해본적이 없는 내가 출장을 갈 때면 늘 책을 서너권 챙겨간다. 한 권 겨우 읽고 올 때도 있고 왜 가져왔나 싶게 그대로 다시 가지고 귀국할 때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출장길에도 4권의 책을 싸들고 나왔다. 두바이를 경유하여 스톡홀름까지 날아가는 장거리 비행길에 졸리지 않으면 책을 읽으며 오다보니 어느새 16시간 이상을 꼬박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 금방 날아왔다.

‘제2의 시간’을 두번째 읽는데 과연 몰입하면 시간은 빨리 흐른다는 제3의 법칙을 확인하고, 새로운 경험과 정보의 처리량이 많아지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제2 법칙도 체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몰아의 상태인 In the zone을 살짝 맛본다. 이 책은 서너번 더 곰삭이며 읽어야 내 것이 될 것 같다.



‘Café Europa’는 한 챕터씩 읽어나가는데 이른바 공산주의 시대의 동유럽인으로 태어나 살면서 늘 선망하던 서유럽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 작가의 진솔한 시선이 100%의 공감과 신선한 관점과 이해를 선사한다. 원서로 읽는 책 중에 이런 몰입감을 준 책은 E.H. Carr의 ‘What is History?’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인 운명처럼 만난 이 책이 참으로 귀하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라인 크로아티아 출신의 여류작가가 그것도 하필이면 내가 지금 향하고 있는 스웨덴 남자와 결혼하여 살면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재미와 함께 많은 영감을 준다.



‘홀로코스트의 공모’를 드디어 완독했다. 나치가 인류 최악의 대량학살을 자행할 때 시대의 양심으로 저항했어야 할 교회와 대학들이 오히려 그 범죄의 공모자로 가담하고 히틀러를 찬양하는 설교와 궤변으로 함께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역사적 고증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입만 열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떠벌였지만 오히려 그 누구보다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역사를 퇴행시킨 지난 정권에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기독교 지도자들과 지식인 행세하는 자들이 오버랩되어 고통스러웠다.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의 독서일기인데 그의 어마어마한 지식과 혜안에 놀라면서도 질리기도 한다. 일부는 공감이 되지만 대부분 나의 짧은 지식으로 인해 버겁고 부담스럽다. 그냥 가볍게 한 장씩 읽어나가며 간접 독서로 다음 읽을 책을 선정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삼으려 한다.

25.6.28 스톡홀름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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