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를 건너며
나의 인생처럼 여행중에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대개 전혀 기대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주어지는 것이라서 기독교적 용어로 은혜라는 말 외엔 설명할 길이 없는 그런 복 또는 행운 말이다. 북유럽 여행 최성수기에 그것도 모든 고객들이 다 인사이드 캐빈(Inside cabin: 바다가 보이지 않는 안쪽 선실)로 배정받은 상황에서 언제나 가장 나중에 남는 방 아무거나 주어져도 감사한 내게 씨뷰(Sea-view) 선실이 주어졌다. 문 열기 전까진 나조차도 몰랐던 상황...
대개 이런 행운은 고객들에게 양보해왔지만 이번엔 모두가 다 같은 조건으로 왔기 때문에 어느 한 고객에게만 더 좋은 방을 주게되면 오히려 형평성에 어긋나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기꺼이 입 꾹 닫고 나 홀로 바다가 보이는 창이 있는 선실의 호사를 누린다. 더 바랄게 없다. 그냥 멍 때리며 창밖만 바라봐도 좋다. 늘 그렇지만 빛 그리고 하늘과 바다, 땅 위와 아래의 모든 것들은 자연스럽고, 질리지 않는 진리이다. 나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가득 차는 이 시간과 공간을 사랑한다.
백야는 문자 그대로 하얀 밤. 해가 언제 지는지 또 언제 뜨는지도 모른채 나름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된다. 창 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잠 들었다가 다시 뜨는 해를 보며 이른 아침에 깨어났다. 여행은 내 삶의 호흡을 길게 하고 실제로 생명 연장의 꿈을 이루며 살도록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무척 장수하고 있으며 지루하거나 덧없이 흘러간 듯한 허망함도 없이 날마다 새로운 자극과 깨달음 그리고 매번 한 뼘씩 더 자라는 자신을 발견한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영원히 반복될 것 같지만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내일 다시 뜨는 해를 보면서 깨어날 수 있을지 모르면서 나는 오늘 지는 해를 전송한다. 잘 가 오늘 고마웠어. 내일 또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