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 boys go to heaven but bad boys bring heaven to you
그를 다시 만난 것은 필부지용이었다. 깊은 생각 없이 죽음을 믿고 함부로 부리는 객기. 그가 몇 개월 만에 나를 만나자고 한 것은 반드시 필연이었다. 나는 응당 와야 할 연락을 맞이하듯 메시지를 읽었다. 내 인생은 계산하지 않은 채 택시비를 계산했다. 분명 그날은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음에도 정신이 맑지 않았다. 그는 꼭 그랬다. 흐릿한 자정 즈음 무슨 맛인지도 모를 것들을 활자 하나하나에 가득 담아 선사했다. 차라리 술을 마실 걸. 그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후회했다.
무엇 하나 개연성이 없는 행위였으나 그와 내겐 당연했다. 나는 또 나를 소비했다. 그렇게 나를 아끼자고 다짐했음에도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나를 함부로 쑤셨다. 그에게선 희미한 술 냄새가 났다. 여태껏 맡았던 익숙한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달라진 서로의 체취를 맡으며 서로의 곁에 있을 사람을 가늠했다. 그가 내게 깊숙이 들어오며 물었다. 그동안의 잠자리는 어땠어? 나는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경멸의 침을 내뱉듯 토해냈다. 숙제? 그러자 그는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은? 사랑이라 대답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다시 토했다. 쾌락?
사랑은 쾌락의 일종이지 않을까. 나는 처음으로 그와 몸을 섞으며 다른 생각을 했다. 그의 집 소파에 널브러진 임산부 수첩. 처음 보는 개 밥그릇. 오랫동안 오갔던 그의 집이 참 낯설었다. 나는 낯선 집에서 낯설어진 이와 한껏 뒹굴었다. 2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온전한 쾌락으로 만든 것을 완연한 고통으로 지우던 날이. 그는 내게 많은 것을 묻고 말하고 흘렸지만 이상하게 그의 말이 하나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영어로 얼버무려도 그의 말이라면 뇌리에 박혔었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마침내 그가 잠들고 나는 늘 그랬듯 깊은 한숨을 그의 방에 가득 메운 채 새벽녘 택시에 몸을 실었다. 어딘지도 모를 곳에 차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아 담배를 태웠다. 내 망상 속 그는 꼭 유명 연예인을 닮은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마주한 그는 망상과는 많이 달랐다. 내 망상 속 그는 꼭 돌아올 것 같은 기세였는데 실제로 마주한 그는 망상과는 많이 달랐다. 사랑이 또 한 번 우스워졌다. 사랑이란 존재의 허위를 감추는 가장 정교한 연극. 충만해질 수 없는 사랑을 갈구하며 자기파괴적으로 망가지는 한낮의 포르노. 그와의 낮은 저급했으나 그와의 밤은 달았다. 적어도 지난여름까진 그랬다.
하염없이 걸었다. 동 틀 무렵 귀가했다. 그가 말했던 높은 집으로.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게 먼지 한 톨 없이 매끄러운 바닥을 밟고 방문을 열었다.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나의 방.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나의 공간. 언제든 결국 돌아와야 하는 나의 지옥. 우리라는 말, 이제는 점점 더 써볼 일이 없겠지. 혐오할 수 없는 나를 혐오한다.
나는 또다시 그를 기다리게 되리라는 걸 안다. 혐오와 욕망은 언제나 같은 지점에서 만났다. 그가 나를 파먹고 떠나도, 그가 남긴 구멍을 또 그로 채우고 싶은 건 내 몫이었다. 사랑은 늘 후회로 시작해 습관으로 끝났고, 나는 그 끝을 다시 시작처럼 착각한다. 습관적 포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