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아니라니까요....
“집이 어디예요?”
“아.. 저요? 저 서울이요”
“서울? 서울 어디요?”
“강남이요..”
“우와... 좋은 동네 사시네요, 부자겠다 그쵸? 하하”
동네를 벗어난 그 어떤 집단을 가더라도 항상 이러한 불편한 상황들이 10번 중에 8,9번은 일어난다. 왜 불편한가 하면 나는 강남에 살지만. 강남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강남에 살아가겠지만. 우리 집안은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중산층이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얘기하는 부자와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는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기준에서의 부자와 중산층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강남에서 정의되는 부자의 기준이 어느 정도의 자산을 얘기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중적인 이야기를 빌자면, 최소 서울 강남 어딘가에 자기 소유의 빌딩 하나는 있어야 하며, 개인예금통장에는 몇십억 단위의 현금이 들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강남에서 얘기하는 ‘부자’란 이 정도의 부를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대외적으로 사회적으로 비강남인들과 대화를 하는 동안에는 이 정도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전제 하에 대화가 이뤄지겠지만 강남이 ‘강남’인 만큼 그 안에서는 모든 단위의 규 모가 ‘강남’스러워진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나와 내 친구들은 어렸을 적부터 그리고 지금도 대부분 강남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사는 것이 우리의 당연시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혜택이고 축복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이러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부모님들이 얼마나 노력하셨는가를 깨닫게 되긴 하지만 실제로 그 깨달음만큼 치열하게 산다던가 정말 죽을 만큼 노력해서 성공이란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보다는 남들 사는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살다 보면 당연히 몇 억씩 벌게 될 것이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들도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에 상당히 안일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의 경과를 봐왔을 때 그렇게 살아갈 확률이 높아 보이긴 한다.
또 다른 예로는 내 주변에도 이러한 얘기들이 자주 들린다
“아 우리 집도 요즘 힘들어.. 아빠 사업도 어렵고”
“돈 없어서 죽겠다 데이트도 못하겠어”
이렇게 얘기하는 친구들의 현재 객관적인 상황을 살펴보자면 우선 이들은 모두 부모님 소유의 집에서 살고 있다. 그 가격대야 천차만별이겠지만 못해도 최소 5억에서 많게는 10억 이상의 집들이다. 부동산이야 어차피 묶인 재산이고 유동성이 없으니 실제 삶의 질과는 완전히 직결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여차하면 집을 언제든 팔아버리고 현금화시킬 수 있으니 돈이 없다기보다는 지금 당장에 쓸 돈이 없다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정말 쓸 돈이 없는 것일까? 내 수중에 만원이 있다고 하면 커피 한잔과 샌드위치 하나정도는 먹을 수 있겠지만, 만일 내가 한 끼를 먹어도 5,6만 원 하는 레스토랑 음식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돈 없어서 밥 못 먹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저 만원은 나한테는 없는 돈이나 마찬가지이다. 밥 한 끼도 먹을 수 없는 무의미한 돈. 이렇듯 대부분의 강남인들의 ‘돈이 없다’라는 표현은 실제로 돈이 없다는 것과는 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자, 서론이 좀 길었으나 다시 나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보자면 나 또한 저러한 얘기들을 자주 한다. 돈이 없다는 말, 집이 어렵다는 말. 하지만 이런 말들은 같은 동네 친구들에게만 하고 그 외에 집단에서는 하지 않는다.
그 이유인즉슨 내가 아무리 돈이 없고 힘들다고 얘기를 해도 그들에게는 배부른 부자 녀석이 투정 부린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내 외모는 빈곤함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하얀 피부 덕분에 더더욱이 곱게 자란 것 같은 이미지가 강한 것이 함정이다.
지금 일관적으로 나의 가난함에 대해 피력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서초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한잔에 7000원 하는 커피를 시켜놓고 테이블 위에는 맥북과 아이폰을 올려놓고 아주 삶이 풍족하고 여유로운 이 동네에 한 구성원처럼 앉아서 ‘나는 가난합니다’라는 글을 쓰고 있다. 이쯤에서 내가 얘기하는 ‘가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정의를 해놓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나의 가치관과 삶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쩔 수 없이 서울 강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얘기하는 ‘가난’은 10억짜리 집이 있는지, 10억 예금통장이 있는지의 여부와는 전혀 동 떨어진 ‘학자금 대출은 언제 다 갚을 수 있을까’, ‘오늘도 라면으로 때워야 하나’ 이러한 고민들을 해야 하는 ‘가난’을 얘기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 정도의 ‘가난함’은 일반적으로 ‘강남인’ 들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일 것이다. 자금의 순환 때문에 선택적으로 대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별미로써 라면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학비를 낼 돈이 없어서, 쌀과 반찬을 살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정도의 상태는 아니기에 이렇게 나름 여유를 가져보며 이 글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