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아문명 관련글 아님 주의
‘아무 작품’이나 ‘무조건 많이’ 보는 것은 좋지 않다. 단 1분짜리 영화에도, 백만 원도 쓰지 않은 초 저예산 영화에도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도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거듭난 자녀라는 전제하에, 성경을 사실적으로 믿는 믿음을 통해 이 말을 더 폭넓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전하고 싶다. 성경을 마치 신화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교육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성경의 사실성과 무오함을 믿는데 까지 먼저는 하나님의 간섭이, 그리고 성경을 가까이하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신화 따위와 유사하게 여기면서 읽는다면 우리는 마치 “하나님, 제게 다이달로스와 같은 공교함을 주시옵소서.”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되고 싶은’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아직 찾아가는 과정이던, 찾은 길을 열심히 달려가는 중이던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두신 소명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건축가를 꿈꾸고 있는 자녀에게 “너의 롤모델은 누구니?”라고 물었을 때 “브살렐과 오홀리압이요!”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안심이겠지만, “다이달로스요!”라고 대답한다면 어떻겠는가?
이왕이면 성경인물을 고르라는 게 아니라
‘허상’이 아닌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1장에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두신 소명이 무엇인지, 심지어 어떤 물건을 만들기 위해 부르셨는지 까지 소상히 적어두셨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주께서 당신을 위해 피조물인 우리를 사용하시며 그분의 계획이 있는 곳에 내가 있어야 하나님의 ‘작품’ 다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브살렐과 오홀리압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말은, 그저 뛰어난 예술적 능력을 달라는 게 아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살고자 한다는 고백이며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도록(잠 12:14) 그 고백을 사실대로 이루실 것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바울의 서신은 구원과 영생을 남겼고 호메로스의 문학은 거짓과 혼돈을 남겼다.
반발이 거셀 것 같지만 소신 발언이다. 놋뱀을 바라보면 살 것이고 불뱀을 바라보면 죽을 것이니, 세상에서 눈을 돌려 성경을 바라봄으로 분별력을 가지고 승리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