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연필을 자꾸 떨어뜨린다.
아직도, 혹은 앞으로도 손그림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는 시대의 변화를 쫓아 열심히 프로그램을 배우면서도 언제나 연필로 그리는 그림에 대한 갈증이 있다.
참 편한 세상이다. 프롬프트 몇 마디 작성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세상에서 칼로 연필을 깎고, 구겨질까 조심하며 펼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잘못 그린 부분은 지우개로 지워가며 번거롭게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 포토샵 ai는 또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리소스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발전이다. 이제는 사진을 보고 그림 같다고 하거나 그림을 보고 사진 같다고 하는 게 칭찬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시대가 온 듯하다는 글을 읽고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가방끈이 짧은 나는, 여러 가지 대단한 이유를 들어가며 왜 손그림을 포기할 수 없는지에 대해 설명하거나 설득할 자신은 없다. 오랫동안 생각해 봤지만, 여태해온 것이 아까워서는 아닌 것 같다. 손그림을 그릴 일이 없다고 해서 내가 배워오고 경험으로 터득한 미적감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얼마든지 색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도 각종 ai에게 적절하게 도움을 얻으며 필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 비록 무료 ChatGPT를 하루에 네 번만 사용할 수 있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만큼 비교적 사용빈도는 적은 편이지만, 그건 아마도 별로 쓸 일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손그림의 '불규칙성'에서 나오는 매력을 좋아한다. 연필의 심지가 종이 위를 긋고 지나갈 때 작은 실오라기들처럼 보이는 섬유가 얽혀 겉으로 보기엔 평평하지만, 사실은 미세하게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가게 된다. 종이와 연필의 마찰을 통해 심지에서 긁혀 나오는 흑연은 울퉁불퉁한 종이 위에 흔적을 남기며 지나간다. 그림을 그릴 때 섬유의 질감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진하게 보이게끔 강하게 힘을 주어 그리다가, 때로는 질감을 살려주기 위해 손끝에 힘을 조금 빼거나 많이 빼고 그리기도 한다. 익숙한 용어로 필압이라고 한다. 물감으로 치면 물과 물감의 농도에 따라 섬유 사이사이 흘러들어 가서 번지는 정도의 차이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다양한 드로잉 프로그램(클립스튜디오, 프로크리에이트, 포토샵 등)을 사용하면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계의 발전에 매번 감탄한다. 요즘 그래픽 프로그램들이 구사하는 불규칙성은 실로 대단하다. '붓 브러시', '연필 브러시' 같은 것을 다운로드하여 입력해 넣어두면 랜덤 하게 변형되어서 마치 종이 위에 그려진 듯한 질감으로 표현된다. 아직은 어색한 부분이 있고, 완전히 사람이 그린 그림과는 차이가 나지만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디지털로도 완전히 사람과 유사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이렇게 놀랍도록 발전한 디지털 드로잉의 이점은 무수히 많다. 실수로 잘못 그렸다면 뒤로 가기를 누르면 그만이다. 반복되는 그림이 있다면 복사해서 붙여 넣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제는 글 몇 자로도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지경이다. 인생은 짧고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눈앞에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하나하나 그리고 앉아있을 시간을 이렇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큰 이점인지 모른다. 아주 아주, 효율적이다.
아주 효율적이고, 내게는 조금 슬픈 일이다.
"나는 빨리 할 수 없는 일을 좋아하니,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없다. 하루하루를 숨고를 시간도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 옆에서 내가 저들을 잘 돕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정해진 시간 안에 맡은 일을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옛 친구들과 멀어져 가면서도 다음날, 바로 그다음 날 해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저녁밥 한 끼 먹을 시간 내는 것이 죄스럽다. 잠도 빨리 자야 하고, 일도 빨리 해내야 하고, 밥도 빨리 먹어야 한다. 사소한 사건들을 두고 떠들어대는 시간은 이동시간에 함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혼자 있다면 재미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이다음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 안부인사는 목례정도면 족하다. 그래도 시간은 부족하다. 알고 있다.
칼로 연필을 깎고, 깨끗한 종이를 화판 위에 올려두고, 연필로 형태를 잡아 그리고, 지우개로 연필선을 정리한다. 도화지에 깔끔한 연필선이 남게 되면 잉크펜으로 깃털 하나하나를 묘사하고, 날갯죽지부터 가장 아래 깃대에 연결되어 있는 커다란 깃털을 향해 결을 따라가도록 표현하고 발가락부터 발톱에 연결되는 근육을 어색하지 않도록 그려 넣는다. 몸통과 날개를 도형으로 보고, 덩어리를 잡아 어두운 면과 그림자가 필요한 면을 찾아 색을 얹어준다. 눈동자에 생기가 드리울 수 있도록 안광을 넣어주고 날개가 펄럭이는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바람을 그려 넣으면 마무리된다.
이 과정은 빠르게 할 수 없다. 그저 차분하게, 그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흰 종이 위에 검은 점으로 시작해 완성하는 것이다. 때로는 매미소리와 함께, 때로는 빗소리와 함께, 때로는 저 멀리 들리는 도시소음과 함께 손과, 눈과, 지금 내 앞의 연필과, 종이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완성을 항해 가는 것이다. 나는 이 고요함을 정말로 사랑하고 사랑한다.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택함 받은 백성이다. 이 땅에는 쉼이 없고, 편안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늘 편안함과 싸워야 한다. 새로운 것과 필요한 것을 공부하고,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알고, 누릴 것은 누려야 한다. 누구와도 무엇과도 싸우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만 하는 것은 산에 틀어박혀 사는 자연인과 다를 바가 없다. 저 밖에서 세상과 , 눈에 보이지 않는 대적들과 전투하는 이들에게 있어 그저 도망자에 불과하다. 그러니 진짜 평안의 본질이 되시는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의 방패, 나의 뿔,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 나의 태어날 날을 정하시고 죽을 날도 정하신 그분 한분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렇기에 나는 시대의 변화를 부정하지도 선호하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필요하시다면 할 것이고 당신께서 필요치 않으시다면 안 할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의 방향이다. 나는 날마다 방황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늘 그 자리에 계신다. 무너지지 않는 하늘처럼, 솟아오르지 않는 땅처럼, 주저앉은 나를 안아 올리시는 어머니처럼 함께 하시니 얼마나 자비하신가. 나의 능력되시는 아버지를 따라 오늘도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