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과잉은 탈모를 부른다.
돈 되는 일을 찾아 장래를 결정하는 것을 진부하다고 표현한 사람치고는 별로 대단한 이유가 아니긴 하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는 '재미있다.'또는 '멋지다.'라는 마음이 장래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인간이라면 재미가 있든 없든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한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가?
그러나 내가 바로 하기 싫은 일은 곧 죽어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른스럽지 못했고 참고 기다릴 줄 모르는 제멋대로의 학생이었던 나는 범법적인 범위가 아니라면 할 수 있는 한 하고 싶은 일'만' 했다. 따라서 그림도 그리기 싫고, 귀찮고, 힘들면 안 그렸고 대부분의 일을 하기 싫으면 안 했다. (노파심이지만 어머니는 나를 상식적으로 키우기 위해 한평생을 고생하셨고 지금도 애쓰고 계신 분이시다.) 그런 나에게 '즐거움'이라는 감정은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감정이다. 즐겁기 때문에 하고 싶고, 즐겁기 위해서 해야 했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자녀의 진로를 위해 내 생각을 묻는 분들이 계신다. 고3 미대입시 보조강사를 세 번 정도 하면서 대략 90명 정도의 학생들을 가르쳤었는데, 입시미술을 해본 학생들은 알겠지만 보조강사는 말 그대로 보조이기 때문에 대단할게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미대를 입학했거나 졸업했다 해도 몇몇의 보조강사를 제외하고는 고3 학생들에게 있어 강사나 교사라기보단 소소한 도움을 주는 선배에 가깝다. 그럼에도 자녀의 진로를 생각하는 부모님은 이런 별것 아닌 사람의 경험에서 나오는 의견이라도 존중해 주신다. 이건 우리 교회 성도님이 아니어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항상 주의할 것은 이분들이 궁금한 건 '의견'일 뿐이라는 것과 나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그들의 결정에 1%도 기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학생마다 성향이나 실력에서 개인차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확인이 필요한 공통요소가 있다면 당연히 "아이가 좋아하는가?"이다. 딱히 대단한 이력도 없는 내게 의견을 물으실 땐 본인은 탐탁지 않지만 아이는 미술을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늘 듣는 질문인 '뭘 먹고 사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에 대한 답변은 간결하게, '아이가 좋아하느냐'에 대해서는 길게 대화를 나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자라고 해도, 새벽 두 시, 세시가 지났는데도 안 자고 있길래 뭘 하나 보면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라거나 "학교에서 맨날 그림만 그리고 있더라고.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하는 등 대답도중에 직접 해답을 찾아가신다. 한 학기 한 학기를 전심전력으로 임하는 대학생들은 모두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예체능 계열은 전공수업시간이 연달아 4시간, 심할 경우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6~8시간도 되고, 과제전이라도 겹치면 소위 말하는 야작으로 사흘 밤낮을 새는 경우도 다반사이다.(약 10년 전쯤 학교에 다닐 때 기준이지만) 학생들이 이 살인적인 시간표를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좋아하고, 재미있고, 하다못해 흥미라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혼인 내가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는 부모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때론 자녀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분도 계신다. 미술자체가 접근성이 높은 분야인 만큼 내 아이가 미술적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 고민하는 경우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미술시간이 제일 싫었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화작가로 입지를 다지고자 노력 중인 사람으로서, 그림 그리기는 '어린이'의 카테고리에 속한 사람이라면 대체로 좋아한다. 성장하면서 '그림 그리기'가 '수학문제 풀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의 취미로 자리잡기에 접근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때, 아이의 미래를 두고 짐작도 안 갈 만큼 많은 염려와 고민과 기도를 해오셨을 부모님이 자녀의 재능에 대한 부분에서 고민을 하시면 감히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그 대신 나는 또다시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자녀분이 좋아하나요?" 그러면 답변하는 동안 어느 정도 결정을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점은 '밤을 새울 정도로 좋아하냐?'는 질문처럼 단편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서 증명했는지를 확인하는 것보다 사람은 태어난다는 것과 재능은 실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재능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려보기도 하고, 슬럼프에도 빠져보며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지만 실상은 너무 자만하다가 원하는 대로 실력이 따라와 주지 않자 스트레스성 탈모가 생겼던 필자의 생각이다. 즐거움도 재능의 영역에 들어간다. 더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은사]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하셨고, 만드셨고, 살게 하신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아직 죽지 않게' 하시는 것이다. 감히 부모님들께 기도제목을 권하는 주제넘은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는 그랬다. "하나님, 저를 왜 지으셨나요?, 저를 왜 살려두시나요?,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셀 수도 없이 많이, 자주 했다. 올바른 말씀으로 교훈해 주시는 목회자의 양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해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너희는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말씀은 늘 명확하다. 우리를 혼란하게 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아직 꿈을 찾지 못한 이 땅에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바라는 것은, 온 땅의 사명과 교회의 사명과 나의 사명이 하나이자 더욱 구체적인 하나로 발견되길 바란다. 내게 있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나의 부르신 구미 안디옥교회의 세 가지 사명과 함께 '내'가 해야 할 '나의'사명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의 달려갈 길이 발견된 것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우연히 만들어진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셔서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길"원하시는지 여쭙는다면 말씀의 해답을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