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프리랜서이자 구미 안디옥교회의 청년입니다.(1)

베짱이가 동화작가가 되기까지

by seoA
요즘 누가 장래희망을 물어봐? 멋없게.


조금 순화했지만 직접 들어본 말이다.

꿈이 없는 멋쟁이는 팥 없는 팥빵 아닐까?


흔히 말하는 '그림쟁이'였던 학창 시절의 나는 딱히 그림 말고 뭔가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장래에 대한 대단한 고민 없이 1년, 10년을 그저 지나오다 보니 엉망이 된 앞치마를 두르고 붓을 들고 있는 내가 미대입시 시험장에 서있더랬다.

어이없이 10대를 지나쳐 고개를 바짝 들어보니 대학생이 되어있었다. 대학시절 영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시각디자인을 함께 배우면서 각종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게 되고 금세 자잘한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든 작업물을 sns에서 본다거나,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게 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고 제주도까지 가서 열심히 기획한 영상을 촬영했을 때는 그만큼 힘들고 그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


고생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20대 초반

그림쟁이가 순수 미술인 서양화나 동양화가 아닌 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적어도 진부하게 돈 안될까 봐서 디자인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뭔가를 손으로 창작하는 영역'에서 장래를 선택하고 싶었던 나는 내 손으로 그리거나 만들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던 해 즈음에, 자유분방한 성격과 노력 없는 태도가 융합되어 말도 안 되게 뻔뻔한 베짱이가 되어버렸고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마저 손을 놓고 있었다. 인생이 멸망의 구렁텅이를 향해 2~3년을 신나게 굴러가던 중, 교회에서 어떤 도서의 표지를 그려달라는 집사님이 나타났다.


"단행본처럼 두꺼운 책은 아니고, 월간지같은 작은 소책자의 표지인데 서아가 그려주면 좋겠어."

"책 제목은 '열매 맺는 삶'이야."


이 사건은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준 커다란 계기 중 하나이자 평생 드리게 될 헌신의 서막이었다. 어떻게 그려드리면 될지 여쭤보니 '네 마음대로 그려달라'하신다. 그 달의 주제였던 다니엘서를 다 읽고 나서 스케치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가 각종 채소만으로 좋은 고기를 먹은 자들보다 얼굴을 밝게 하셨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오른쪽에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옆모습을 크게 그린 뒤 밝은 색으로 칠하고 반대편엔 찌푸린 옆모습을 작게 그려서 어두운 색으로 칠했다. 윤택한 고기와 풍성한 채소도 그려 넣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아이디어지만 흑역사라는 게 늘 그렇듯 당시엔 마음에 들었다. 입시미술을 하면서 배운 각종 잔재주를 다 쏟아부어가며 열정적으로 그린 그림은 조잡하기 그지없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뿌듯했다.


12년 전 바로 그 그림

작업을 맡긴 집사님은 그 시기 내가 다니던, 지금도 섬기고 있는 구미안디옥교회에서 각종 시각자료와 미디어에 관한 모든 것을 담당하고 계셨었다. 물감을 겹겹이 바르고 닦아내기를 반복해서 너덜너덜하게 울어있는 내 도화지를 건네받고, 칭찬을 아낌없이 쏟아주셨다. 집사님은 그림을 집으로 가져가 스캔을 뜨고, 얼룩을 보정하고, 글자를 넣어 인쇄용으로 편집한 뒤 멋진 책 표지로 만들어주셨다. 처음 책으로 만들어진 형태를 봤을 때의 기분은 쉽게 말하자면 그냥 짱이었다. 이건 다 아는 비밀이지만, 괜히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책상 위에 쓱 올려두곤 했었다. 당시 내 눈에는 이 그림을 이렇게 멋진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상당히 멋져 보였던 것 같다.


그렇게 편집 작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나는 붓을 내려놓고 마우스를 붙잡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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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