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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아 Mar 21. 2018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

마음의 독소를 빼주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최근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았다.

한국 영화로 리메이크되어 나왔을 때 '과연 사람들이 공감할까?' 걱정했는데 그것은 나의 과소평가였다. 영화에서 나오는 음식은 자동적으로 침샘을 자극했고, 스토리는 생각할 것들이 가득해지게 했다.


나는 고향을 떠나온 적도 없고, 고시를 준비한 적도 없지만 주인공들에게 많이 공감했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몸과 마음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리틀 포레스트가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금 살고 있는 집, 예전의 나,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게다가 한때는 집이 너무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집에 있는 게 좋았었는지 깨달았다.


우리 집은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단독주택이며, 외할아버지가 오래전부터 직접 설계하셨다. 집 주변에는 북한산이 가깝게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가족은 외조부모와 가깝게 살아서 외갓집에 종종 놀러 가곤 했다. 집안이 어려울 때는 같이 살기도 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외할아버지를 모시며 함께 살았다.


10년을 넘게 그와 함께 살았다.

그 시간 안에 나는 힘겨운 10대와 20대를 보냈다.

우울증에 걸렸고 거식증에 걸렸다. 그래서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그때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채식 베이킹을 많이 만들었지만, 채식요리도 종종 만들었다. 그리고 음식들은 외할아버지에게 드리곤 했다. 무뚝뚝하셨지만, 내가 만든 음식은 싹싹 비우셨다.


어떤 날은 따듯한 봄햇살을 받으며 요리하고,

어떤 날은 더워서 땀 흘리며 요리하고,

어떤 날은 비가 와서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흙냄새를 맡으며 요리하기도 했다.

그때는 할 일도 없었고, 내 몸과 마음을 고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작은 숲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심어지고 자라난 것이다.

창문에서 바라본 집 마당


최근 스트레스+걱정+불안이 커질수록 커피와 인스턴트의 섭취량은 늘어만 갔고 몸과 마음의 독소가 쌓여만 갔다. 그래서 대부분 집에 있을 때는 누룽지와 김치, 김이 식사의 전부였다. 예전에는 직접 요리를 자주 해 먹었는데 그 방법을 잃어버렸다. 밖에서는 누군가의 한마디.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사람들을 욕하기도 하며, 혼자 뒤처질까 봐 끙끙 앓았다. 무언가의 대책이 필요했으나 퇴사가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날을 보내다 영화를 보고 나니 신선한 음식들이 마구 당겼고 쉼이 필요했다. 갑자기 농사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신선한 제철 재료로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독소가 조금이라도 빠지고 나면 내 삶의 균형이 잡힐 것만 같다.



얼마 전부터 집 사진을 찍어 조금씩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들려주세요. @bulgwangdong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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