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삶을 살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까지의 내 선택은 약속어음 같은 선택이었다.
'대학에 가면, 휴학을 하면,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하면, 다음에 더 좋은 직장에 가면...' 마치 이루고 나면 지금의 고민들이 다 풀릴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목표를 성취하고 나면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작년에 한참 재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필 아르바이트하는 장소가 대학 동기가 일하고 있는 회사와 가까웠다.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친구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괜찮은 회사에 다시 취업하면 펑펑 울 일은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시 시작된 직장생활. 성취감은 오래가지 못한 채, 나는 또 다른 약속어음을 발행했다.
얼마 전 여행을 다녀왔는데, 떠나기 전 '이번에도 여행에서 돌아오기 힘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무거운 마음을 끌고 올 생각에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다 여행 중에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는 여행을 떠난 시간, 일하지 않는 시간만 내 삶이라 여겼다. 여행을 가지 않고 회사에 앉아 일하는 삶은 내 삶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의 삶을 인정하고, 담담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작년에 발행한 '또 다른' 약속어음은 찢어버렸다.
지금의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지금의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오래 할 생각이 없다는 것만 알아서 길게 다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회사에 가기 위해 혹은 지금의 회사가 너무 싫어서 회사를 나오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온몸으로 느꼈다. 왠지 이번 퇴사는 약속어음을 발행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