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옥수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

by 서빛

"엄마 섬섬옥수가 뭐야? 옥수수 이름이야?"


어릴 적에 내가 엄마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어떤 노래 가사에 '섬섬옥수'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섬섬옥수는 말이야. 정말 곱디 고운 예쁜 손을 뜻하는 말이야. 마치 네 손처럼."


엄마가 다정하게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엄마 손이 더 좋아. 무척 예뻐."


나는 해맑게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손을 잡은 엄마의 손은 따뜻하고 예뻤다. 길고 가냘픈 손가락에 손톱이 정갈하게 예쁜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 둘을 길러낸 고운 두 손은 하도 입어서 닳은 옷처럼 매끄러운 광택이 났고 여기저기에 단단한 굳은살이 자리했다. 그 곱디 고운 갸녀린 손을 다행스럽게도 내가 고이 물려받았다.


어린 시절 잠이 들기 전이면 아빠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내 방을 찾아와 내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말해주었다.


"네 엄마 손도 이렇게 예쁘고 부드러웠는데... 소싯적에는 말이야 네 엄마 손이 더 예뻤어."


그때 아빠의 눈은 젊은 날에 엄마를 떠올려 애정이 담뿍 담긴 그런 눈빛이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나를 바라보며 단호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네 손을 잡으면 정말 예쁘고 감촉이 부드러워. 마치 전기가 찌릿찌릿 통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아무나 손 잡아주면 안 돼."


나도 내 손이 무척 예쁜 것을 잘도 인지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가느다란 손가락에 몽돌바위처럼 모난 곳 없이 적당히 둥근 모양으로 박힌 손톱이 예뻤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면 더욱 이뻤고 반지를 끼면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그렇게 학창 시절에 줄기차게 교칙을 어겨가며 손톱을 색칠했고, 혼이 나도 주렁주렁 반지를 끼고 다녔었다. 손톱을 기르면 더욱 가녀려 보였고 자르면 자른 대로 단정하고 깔끔해서 예뻤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보니 예쁜 것이 전부였고, 그다지 쓸모가 있지 않았다. 손 끝이 휘어서 악기를 다루기 어려웠고, 가느다란 덕에 힘이 없어서 물 뚜껑도 제대로 열지 못할뿐더러 손에 든 물건을 곧 잘 떨어뜨리고는 했다. 손 끝이 야무지지 않아서 미술시간에 만들기 또는 그리기 과제를 잘 해내지 못해 미술시간을 싫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중 에서 유일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임한 미술 과제가 있었다. 본인 손을 스케치하는 과제였다. 내 손을 생긴 그대로 그리면 작품처럼 섬세해 보여서, 그림 실력이 형편없어도 그저 손을 잘 따라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유일하게 딱 한 번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20대가 되고 나서 나는 엄마의 말이 맞아 들었음을 깨달았다. 어떤 남자에게서 고백을 받은 날, 그가 내 손을 잡고 싶다고 얘기했다. 나도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차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 손을 조심스럽게 내주었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은 후에 내게 건넨 그의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 손을 어찌나 잡고 싶었던지..."


엄마의 말대로 백만 볼트 전기가 찌릿찌릿하고 제대로 통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예쁜 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연애할 적에는 내 손의 백만 볼트 전력이 제대로 통했을지 모르지만, 결혼하고 살림을 하려니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밥을 지을 때, 설거지를 할 때, 요리를 할 때, 빨래를 개켜야 할 때도 도움이 되지 않아 애쓰느라 벅찼다.


그럼에도 나는 해내야만 했다. 집안일이란 무릇 누군가가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손에 차곡차곡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나의 곱디 고운 가녀린 두 손은 엄마의 손처럼 광택이 나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건조하고 푸석푸석해졌다.


결혼 이후로 오랜만에 만난 친언니가 내 손을 잡더니 이런 말을 했었다.


"네 손이 정말 부드럽고 말랑말랑했었는데, 이제는 엄청 딴딴해졌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조금 슬픈 감정이 일었다. 두 손을 마주 잡고 비벼보니 군데군데 자리한 굳은살과 거친 거스러미가 느껴졌다. 병뚜껑을 제 힘으로 따기 시작하면서 새끼손가락 부근에 굳은살이 잡혔고, 검지 손가락 마디가 두꺼워져 반지가 잘 들어가지 않았다. 어른들 눈에 거슬리고 싶지 않아 새로 배운 젓가락질로 인해 가운뎃손가락 마디에도 얕은 굳은살이 잡혔다.


손톱이 길면 음식을 조리할 때에 불편하고, 아이 몸에 생채기를 내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더 길게 기르지 못하고 항상 바짝 잘라서 깔끔한 청결 상태를 유지하곤 했다. 그럼에도 아직 손가락의 힘은 부족할 때가 많지만, 군데군데 잡힌 얕은 굳은살을 보니 열 손가락들이 서로 의기투합하서 으쌰으쌰 힘을 내고 나의 살림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결혼 6년 차가 되자 어느 정도 살림이 손에 익은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집안일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화장실 청소를 10분이면 후다닥 끝낼 수 있고, 우왕좌왕하던 감자채 볶음도 10분 컷이다. 국 끓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고, 야채 손질로 인해 더는 요리 시간이 지체되지 않았다. 살림 속이 없는 과거의 나로 인해 맛없는 음식을 먹던 남편은 이제는 맛있다고 흔쾌히 말해주었고, 아이가 잠깐만 기다리면 내가 금방 아이의 욕구를 해결해 줄 수 있어 떼쓰는 시간이 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갈비찜, LA갈비구이를 내가 먹고 싶을 때에 척척 요리해서 언제든 맛있게 즐겨 먹을 수 있다.


살림 속이 생긴 덕에 작은 꿈도 하나 생겼다. 시어머니에게 김장하는 법을 배워서 내가 애정하는 사람에게 내가 직접 담근 김치를 나눠주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매년 시어머니에게 김장 김치를 받아서 먹다 보니 든 생각인데, 김장 김치를 나눠준 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수고로움을 안고 -맛이 어느 정도 보장된 김치를- 애정과 자부심을 담아 주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이것을 이루고 말 것이다.


나는 남부럽지 않은 야무진 손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스타일링도 착착 내 맘에 쏙 들게 할 수 있었다. 미용실에서 3시간 넘게 걸리는 시술을 하지 않고 간단하게 커트만 했다. 그러고 나면 집에서 스스로 고데기나 드라이기로 원하는 스타일링을 마음껏 할 수 있다. 메이크업도 때와 장소에 따라 분위기를 연출해서 돈 주고 맡기는 것만큼 잘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새로운 취미를 시작한 것이다. 야금야금 코바늘로 뜨개질 소품을 만들었던 내가 이제는 대바늘 뜨개질을 독학해서 내가 입을 수 있는 옷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는 내게 작은 성취감을 안겨주어 뜻밖의 기쁨을 선사했다. 다가올 계절에는 무엇을 떠볼까 하며 실을 고르는 시간이 무척 즐겁다.


그렇지만 덥고 습한 여름에도 내 손은 무척이나 건조하다.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손에 바셀린밤을 듬뿍 발라 갑갑한 면장갑을 끼우고 잠을 잔다. 그래야만 다음 날에 손이 가렵고 건조하지 않아서 매일 해야 하는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종종 주부습진을 앓는 나의 손은 섬섬옥수의 고운 빛이 바랬지만, 이제 열 손가락이 남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제 몫을 충분히 해내는 똑 부러지고 빛나는 손이 되었다. 타고나길 야무진 손이 아니었기에, 남들보다 배로 노력을 해야 했던 과거의 시간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이제는 섬섬옥수가 아니라고 하여도 괜찮다.

내 눈에는 여전히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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