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뚜껑

by 서빛

분주한 아침을 맞이한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오전 일정만 보고 이른 퇴근을 하는 날이라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하려는 계획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뻑뻑한 눈에 안약을 넣어 광명을 찾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 정리를 하고 침대에서 나왔다. 바스락 거리는 이불 소리에 아이가 잠에서 깨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 나를 찾고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이불 자국이 물결무늬로 나 있는 볼에, 침 자국이 묻은 입가에, 눈꼽이 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 표정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아침의 찌뿌둥한 피로감을 뒤로한 채 아이를 껴안으며 입맞춤을 해주었다. 오늘 하루가 행복으로 가득찰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흐린 하늘 너머로 해가 드문 드문 빛살을 비추고 후텁지근한 초여름 바람이 살랑댔다. 조금 떨어져 있는 앞 산에서 불어오는 녹음의 짙은 풀내음이 내 마음에 설렘을 안겨주었다. 아이와 꺄르르 웃으며 세수를 하고 간단한 주먹밥을 차려주었다. 아이가 주먹밥을 집어먹는 동안에 내가 외출 준비를 하면 딱 알맞을 시간이었다.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주방을 정리하며 돌아보니 식탁에 뚜껑 없는 물병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내가 외출할 적에 항상 들고 다니며 애용하는 먹색의 스테인레스 물병이었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뚜껑과 함께 식기 건조대에 올려 두는 편인데, 뚜껑은 온데간데 없이 물병만 있었다. 그 순간 어제 저녁의 한 순간이 장면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어제 저녁에 아이가 주방 냉장고 앞을 서성이며 손에 먹색 물병 뚜껑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마도 물기를 말리느라 조리대에 올려놓은 물병 뚜껑을 아이가 어떻게 해서 손에 넣은 모양이었다. 나는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정신없이 저녁 요리를 하고 있었던 때라 말릴 틈이 없었다. 그 이후에 뚜껑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에게 물병 뚜껑을 건네받은 기억이 없고, 어딘가에서 뚜껑을 되찾은 기억도 없었다.


이런! 물병만 남기고 뚜껑이 사라진 것이었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생활용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적부터 물건을 빈번하게 잃어버려 곤란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잃어버려도 되는 물건과 그러면 안되는 물건으로 나눠서 갖고 놀 수 있게 범위를 정해주었는데,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뚜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별 것 아닌 물병 뚜껑 가지고서 뭘 그리 호들가 떠냐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잠깐의 외출을 할적에도 꼭 물을 챙겨서 다녔다. 수중에 물이 없다고 인식을 하면 갑자기 입이 바짝 마르고 마른 갈증이 나서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마시는 물의 온도에 민감해서 무척 고심하고 산 스테인레스 물병이었다. 오늘 외출 준비물에도 꼭 구비해야는데, 중요한 뚜껑이 사라진 것이다.


물병에 뚜껑이 없으면 물병 존재의 가치는 떨어지고 만다. 특히, 갖가지 짐을 바리바리 챙겨야 하는 아이 엄마에게 뚜껑없는 물병은 무용지물인 셈이다. 생수 한병을 챙기면 되고 말 일이지만, 하필 생수도 다 떨어져 있던 참이었다. 그래, 목적지에 가서 편의점을 들러 물을 사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내게 중요한 문제는, 그 뚜껑이 언제 내 수중으로 되돌아올지 미지수라는 점이었다.

나는 거실에서 놀던 아이를 부르고 눈높이를 맞춰 앉아 물병을 보여주고는 말했다.


"복덩아 이 물병 뚜껑 어딨어? 찾아서 엄마 갖다 주세요."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물병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다.


"오?"


고작 오? 라는 아이의 한마디에 속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복덩아 잘 생각해봐. 엄마가 무척 아끼는 물건이거든. 우리 같이 뚜껑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까?"


아이는 갸우뚱거리며 뒤를 돌아 거실 구석에 있는 장난감 상자로 향했다. 옳지! 요즘 부쩍 소통이 통하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내 말을 알아 들은 모양이었다. 아이는 장난감 상자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를 내며 책, 로보트, 자동차를 꺼내다가 말고 매트 위에 덩그러니 누웠다. 그리곤 매트 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장난을 쳤다.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키고 내가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 집에 장난감 상자는 총 3개, 전부 상당한 크기로 여러가지 잡다한 장난감이 뒤섞여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모잘라서 뒤집어 엎을 수는 없었고, 손으로 큼지막한 장난감만 꺼내어 바닥을 훑어보았다. 안타깝게도 물병 뚜껑은 아이 손바닥보다도 작아서 찾기 어려웠다.


한숨을 쉬고 마음을 내려놓아 포기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포기가 쉽지 않아 답답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어 가슴을 세차게 두드려도 해소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도 안 통하는 아이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곧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아있다. 고작 뚜껑 하나로 인해 계획이 틀어져 시간이 지체될 것만 같았다. 별 것 아닌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생각에 숨이 차기 시작했다.


'진정을 해야 해. 아무일도 아니잖아. 이 까짓 일로 숨이 차면 어떡해.'


나는 코로 숨을 깊게 마셔 폐를 팽창 시킨 후에 그 상태에서 다시 한번 코로 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입으로 천천히 내쉬었다. 경직돼있던 어깨와 가슴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숨쉬기가 한결 편안해졌다. 한 번 더 반복하면서 나의 격앙된 감정을 진정시켰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외출복을 손에 들고 이리 저리 흔들면서 뛰어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나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별 것도 아닌데, 사소한 뚜껑가지고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이게 뭐라고.'


이 먹색 물병이 없어도 대체할 물병이 하나 더 있음을 나 자신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이리도 화가 나는 것일까.

뚜껑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속상한 것일까.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내게 화가 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조용히 식탁에 덩그러니 있는 뚜껑 없는 물병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물을 담을 수는 있으나, 뚜껑이 없어 물이 셀 염려가 있으므로 결국 제 쓰임을 하지 못하는 물병이 마치 내 모습처럼 보였다. 내 이름 하나 떨치지 못하고 누군가의 아내, 누구 엄마로 살며 뚜렷한 존재감 없이 사는 나의 모습이 물병에 투영되었다. 잃어버린 뚜껑은 마치 '나' 라는 존재감으로 여겨졌다. 나의 존재감을 잃고 방황하며 빛바랜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었다.


꼭 너를 잃어버렸어야 했어?

왜 제대로 너를 지켜주지 못했어?


어쩌면 내가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애꿎은 아이에게 엄마가 아끼는 것이니 찾아달라고 호소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너를 아끼고 너를 찾으라고 호통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나의 감정을 인지하고 나의 상태를 인정을 하자 속이 편안해졌다. 울컥해서 눈물이 차올랐지만, 곧바로 훔쳐버렸다. 바로 해야할 일이 있었다. 뒹굴거리며 놀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꼭 안아주며 말했다.


"엄마가 미숙해서 미안해. 여린 너에게 속상하다고 화풀이를 해버렸어. 다신 그러지 않을게."


아이는 그저 엄마가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꺄르르-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뚜껑 따위 없어져도 괜찮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로 되찾으면 다행이고, 또 마땅한 것을 다시 사면 될 일이다. 애먼 곳에 화풀이 할 일이 아니라 비로소 나를 찾으면 모두 해결될 일이었다.


띠띠띠디-.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환한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남편을 맞이했다. 오늘 나는 있는 힘껏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단, 잊지는 말자.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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