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물.
세상에 자식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몸소 낳고 키워보니 토씨 하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굳이 눈에 넣어보지 않아도 아프지 않을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하는 바이다. 자식이란 그만큼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는 언제든지 자식으로 인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얄궂게도, 나는 지옥을 먼저 맛보게 되었다.
한 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지옥을 헤맸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기억을 거슬러 배 속에 아기를 품었던 해를 떠올려 보면 그렇게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며 행동 하나에 신중을 기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하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바쁜 시기에 임신을 하게 되는 바람에 임신 초기부터 궁극적으로 몸에 무리가 갔다. 중간에 그만둘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남편이 나의 출퇴근을 위해서 운전을 도맡아 주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상태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을 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조심해서 일을 했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서 날마다 속옷에 피가 묻어 나왔다. 기껏 품은 생명을 지키지 못할까 봐 막막한 두려움에 매일 잠을 설쳤다. 병원에서는 간곡하게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나를 타일렀지만,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고 내가 도맡은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태아를 지켜야 할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중요하지만, 나로 인해 막연한 피해를 떠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중간에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아기는 생각보다 강해요"
처음으로 임신이라는 과정을 겪고 매일 나처럼 불안한 하루를 보내는 임산부들에게 이미 경험한 엄마들이 힘내라며 해주는 말이다. 나는 그 말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기를 믿고 강한 정신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매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하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생활하며 마침내 나는 일을 끝마쳤다. 끝맺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움을 준 남편에게 고마웠고, 나를 배려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무엇보다 내 뱃속에서 강하게 버텨준 아기가 몹시도 갸륵하고 기특했다.
그 이후로 나는 들어오는 일을 모두 뿌리치고 오로지 나와 아기에게만 집중했다. 매 끼니를 영양가가 풍부하고 정성스러운 한 끼를 챙겨 먹었다. 다행히도 입덧이 전혀 없고 수시로 배가 고파서 하루에 5끼를 즐겁게 먹었다. 살이 찌건 말건 아기가 영양분을 필요로 하면 주저 없이 채워주었다. 속옷에 더는 피가 비치지 않고 아기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은 초음파를 보러 갔는데, 아기가 내 뱃속에서 다리를 폈다 구부렸다 하며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았다. 사랑스러운 그 모습에 감격을 한 나는 병원 복도에서 남편 어깨에 기대어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처음으로 기쁘고 행복해서 눈물이 나오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그로부터 나는 영상을 따로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매일 밤 그 영상을 보며 아기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35주 4일이 되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는 남편을 배웅하려던 차에 이상한 낌새가 들어 화장실을 가보니 속옷에 새빨간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다. 골반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걷기 힘든 나는 서둘러 남편을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어찌 된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아기가 예정보다 한 달 빨리 나오게 생겼다. 아기가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극심한 공포 속에서 내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덜덜덜 떨렸다. 그러는 바람에 허리 마취 주사를 몇 차례나 실패했지만, 나를 다독이는 간호사의 손짓에도 내 몸은 의지와 다르게 진정할 수 없었다. 하반신 마취가 시작된 후 떨림이 잦아들었고, 나는 수술실 안에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내 아기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응아앙- 응아 아앙-"
고요한 적막을 깨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핑 돌아 시야가 흐려졌고 코가 막혀 숨쉬기가 어려웠다.
"산모님 왼쪽에 아기가 있어요 보세요."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나는 서둘러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돌리자 인큐베이터에 사람 팔목만 한 크기의 작은 아기가 찡그리고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에 아기가 보이지 않아 눈을 바쁘게 깜빡이며 아기를 내 눈에 담으려고 애썼다.
35주 4일 2.5kg. 너무나도 작았던 내 아기는 미숙아로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아기는 자가 호흡이 어려운 탓에 곧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야만 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들은 호흡 같은 이슈로 인해 곧잘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아기를 볼 수 없었다. 의사가 내게 말하길 아기의 배변 과정이 순탄치 않아 장이 부풀어서 3차 병원으로 즉시 이송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수술 부위 때문에 병원 복도에 주저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벽에 기대서서 울음을 토해냈다.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이런 거였구나. 나는 아기를 만나지도 못한 채로 곧바로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만 했다. 내 기억 속에 아기는 수술실에서 세상에 처음 나와 찡그리며 우는 옆모습만이 전부였다.
아기를 3차 병원으로 보내고 나서 내 눈물은 마를새 없이 매일 흐르고 또 흘렀다. 우리는 안전하게 이송된 아기의 상태를 전화로 전달받았고, 걱정하는 우리를 위해 담당 간호사가 아기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잠이 들어 눈을 감은 평안한 얼굴이었지만, 작은 얼굴 양쪽에 테이프가 붙여있고 코에는 호스를 부착하고 있었다. 가슴과 복부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테이프와 연결돼 있는 호스를 보자 죄책감이 일어 가슴이 먹먹하고 찢어지는 듯했다. 소리 내지 못하고 혼자 울음을 삼키던 중에 간호사가 진통제를 바꿔주러 내 병실 커튼을 열고 들어왔다. 혈압을 재고 수액을 바꾸는 과정에서 내가 끅- 끅 소리를 내며 울음을 참자 간호사가 내 어깨를 잡고 말했다.
"산모님, 소리 내어 우세요. 울음 참지 마세요. 충분히 힘든 상황이에요. 소리 내서 울어도 괜찮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고, 간호사는 말없이 할 일을 다 하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나는 건강한 초유라도 짜내야 한다는 생각에 밥을 열심히 먹으려고 했지만, 한 입 먹으면 먹을수록 사진 속 아기가 아른거려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낮이며 밤이며 젖을 짜는 것에 집중했고, 캄캄한 새벽에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잠을 설쳐가며 젖을 짜냈다. 남편은 내가 정성스럽게 짜낸 젖을 가지고 아기가 입원한 병원을 오가며 부지런히 배달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묵묵히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4인실에 입원했던 나는 퇴원날까지도 병실 커튼을 거두지 않고 줄곧 닫은 채로 있었다.
아기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퇴원날이 다가온 나는 마냥 병원에만 있을 수 없어 조리원으로 남편과 단둘이 갔다. 매일 옆 방에서, 복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아 내 방은 나날이 허전함이 커져만 갔다. 나는 조리원에서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짜낸 젖을 신생아실 냉장고에 가져다 두고 홀로 공용 거실에 앉아 고요함에 잠식되었다.
아기도 없이 나는 여기에 왜 있는 것일까.
집에 돌아가면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하지.
내가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진정 없는 것일까.
나는 엄마로서 자격이 있나.
죄 없는 아기가 왜 나 같은 엄마를 만나서...
병원에서는 대부분의 신생아에게 일어난 일은 산모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만, 엄마들은 공통적으로 다 같은 생각을 한다. 자식이 아프면 내 탓이고 오로지 나의 잘못이라고 여겨 무거운 죄책감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나는 매일 밤 죄책감을 곱씹으며 죄 없는 반성을 되새김질하고 암울한 채로 시간을 죽이다가 마지못해 눈이 감겨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병원에서 아기 복부를 째고 태변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하니 동의서를 써달라고 연락을 했다. 어쩌면 수술하고 회복기간 동안 짧게 또는 길게 보호자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남편에게 주저 없이 말했다.
“다음 학기부터 나가기로 했던 수업 취소할게. 내가 병원에 가있을 거야. 검색해 보니까 수술 입원기간이 길게는 6개월에서 1년 걸린다고 해. 그러니까 당장 전화해서 수업 취소할게. “
계획대로라면, 나는 출산 후에 한두 달 정도 몸조리를 하고 학교 강의를 나가려던 참이었다. 남편은 놀란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던 내 손을 막았다.
“아직 기다려. 수술 끝나고 취소해도 늦지 않아. 수술하고 나서 병원에서 뭐라고 하는지 기다려 보자.”
그때 당시 나는 입원 기간이 짧건 길건 간에 무조건 아기 옆을 지켜줘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이라고 할지언정 내 새끼만큼은 내가 지킬 것이라고 맹세했다. 정신이 번뜩 들어 시야에 들어온 모든 것이 또렷해졌다. 내 새끼가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정신 차리고 굳세게 버텨야지.
다행스럽게 나의 간곡한 청에 천운이 닿은 걸까. 아기의 수술 과정은 수술이라고도 하기 어려울 만큼 가벼운 시술 과정으로 끝이 났다. 우리 부부는 지옥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조리원에서 남은 일주일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다. 병원에서 보내주는 사진 속의 아기는 -아직 코에 호스를 달고 테이프를 이곳저곳에 붙이고 있지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하품도 하고 웃음도 지어 보였다. 나와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정말 내가 낳은 아기가 맞나 싶었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가슴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났다.
아기는 내가 조리원에 머무는 동안에 무사히 회복 과정까지 끝마쳐서 내가 퇴소하는 날 아기의 퇴원도 함께할 수 있었다. 적막할 뻔한 집에 혼자 돌아가지 않게 되어 정말 가슴 벅차게 행복했다. 우리는 사이좋게 천국 같은 집으로 함께 돌아갈 수 있었고, 우리는 나날이 행복한 아우성으로 집안을 가득 채웠다. 현재 말썽꾸러기 내 아들은 매일 정신없이 내 혼을 쏙 빼놓으며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나를 빼닮은 외모는 마치 내 어릴 적 사진을 보는 느낌을 자아내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천지분간을 할 수 없는 나이 인지라 하루도 사고를 치지 않는 조용할 날이 없지만, 태어나서 그 작은 몸으로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그저 건강함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이렇게 매일 내 생애 가장 빛이 가득한 날들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엄마란 이런 거구나.
항상 엄마가 곁에서 지켜줄게.
사랑한다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