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 앞 대형마트를 자주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주차가 편리하고, 장을 보기 좋고, 각종 편의시설들이 다양하게 있어서 아이와 외출하기 수월하다. 그리고 꽤 좋은 맛의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가 있다는 점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1층에 위치한 이 카페는 연휴를 제외하면 한적해서 머무르기에 편안하고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이 든다. 전체적인 인테리어를 보면, 붉은색 벽돌과 푸릇푸릇한 인조 풀을 벽면에 가득 채웠고 이 둘의 조합을 어우러지게 배치해 싱그러우면서 아늑한 느낌을 선사해 준다. 특이한 점은 창가에 사람 허리 높이부터 시작하는 화단을 만들어서 천장까지 닿는 길이의 커다란 선인장들이 즐비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선인장들은 인조가 아니고 살아있는 생물의 선인장들이다. 각양각색의 형태로 즐비한 선인장들이 마치 제주도에 여행을 와있는 듯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겨서 내게 설렘을 안겨주었다. 카페에서 마트 내부로 이어지는 상점가의 풍경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흥미롭다.
그러던 어느 날, 초여름을 맞이한 날씨에 습하고 녹음이 짙은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아이스 카페라테 한 잔을 시키고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 카페에 오기도 했고, 하필 그날따라 사람이 더욱 없어서 카페에 들르는 사람마다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이윽고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중년의 부부가 카페로 들어왔다. 여자의 복장은 산뜻하고 세련된 착장으로 나이에 비해 멋스럽고 우아해 보였다. 그녀는 굵게 웨이브 한 중단발 머리에 살구색 하늘하늘한 셔츠를 입고 하얀색 코튼 소재의 긴치마와 매치하여 산뜻하면서 여성스러웠다. 같이 동행한 그녀의 남편은 리넨 소재의 회색 블레이져를 걸치고 남색 바지를 매치하여 중후하고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또각또각 샌들힐 소리를 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남편은 그 모습이 익숙한 듯 카페 테이블에 앉아서 잠자코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한 관찰을 마친 나는 시선을 거두고 가방에서 이북리더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어제 읽다 만 책을 이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커피 주문을 마친 그녀가 남편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하지 않고, 카페 창가에 즐비해 있는 선인장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또각 거리는 샌들힐 소리와 함께 그녀는 테이블 사이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스마트폰을 꺼내 선인장 사진을 찍고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큰 선인장을 처음 봐서 신기한 것인지, 주문한 커피가 나온 후에도 그녀의 행동은 이어졌다. 하필 내가 앉아있는 자리가 창가와 가까워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행동에 눈길이 갔다.
삐-삐-
그녀가 재촉하는 진동벨을 들고 커피를 받으러 가서는 카페 사장에게 물었다.
"언제 물을 주세요?"
그녀는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선인장들을 가리켰다.
"일주일에 한 번 주기적으로 주는 편이에요."
카페 사장이 친절하게 답했다.
"사실 제가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선인장이 너무 이뻐서 들어왔어요"
그녀가 선인장을 바라보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아, 그러셨어요?"
카페 사장이 화답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제가 선인장을 무척 좋아해서요. 하하하하"
그녀는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인장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카페 사장이 흐뭇한 얼굴로 감사 인사를 했다.
카페 사장과 대화를 마친 그녀는 커피를 들고 남편이 앉은 테이블로 유유히 걸어가 커피를 건네주었다. 말없이 커피를 받아 든 남편은 일어나서 카페를 나갈 채비를 했다. 그녀는 아쉬운 듯이 창가로 돌아서서 선인장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살짝 미소 지으며 뒤돌아 나갔다.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활기차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나는 화사한 후광이 감도는 것을 보았다.
이 광경을 지켜본 나는 그녀가 남기고 간 여광을 음미했다. 선인장을 좋아하는 그녀는 아마도 추측건대 집 안에 다양한 선인장을 키울 것이다. 그리고 매일 선인장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때때마다 흙을 만져보고 물을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빛나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는 사람을 만날 적에는 선인장 얘기를 하며 카페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쾌하게 웃으며 취미 생활을 공유할 것이다. 장시간 외출을 하거나 외박을 하는 날이면 선인장에 미처 물을 주고 오지 못해서 마음 한편이 무거울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바삐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선인장에게 달려가 그들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볼 것이다.
어린 왕자가 장미꽃을 특별히 여겨 소중하게 다뤄주는 것처럼 애지중지 아껴주고 선인장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녀는 선인장으로 인해 매일 빛나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겠구나.
그녀로 인해 선인장은 생명의 빛을 내뿜을 것이고, 선인장을 좋아하는 그녀의 일상은 소소한 빛이 날 것이다.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반짝반짝하고 빛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묵묵히 뒤에서 그녀를 기다려주는 그녀의 남편이 떠올랐다. 그는 군소리 없이 그녀의 취미를 존중해 주고 기꺼이 그녀에게 당신의 시간을 내주었다. 그들이 시간적으로 여유로워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단순히 시간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를 존중해 주는 그의 매너 있는 태도에서 초래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시간을 내주면서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몹시 어려운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선인장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들를 예정에 없던 이 카페에 그녀와 함께 동행했고 그리고 묵묵히 앉아서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얼마나 애틋한 사랑인가.
이 세상에 사랑한다는 이유로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나의 의지에 달려있고, 사랑에도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서로를 존중해 주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빛나는 사랑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영원을 선물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나도 그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싶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야말로 거룩한 가치가 있고 소중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