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길거나 짧거나, 혹은 크거나 작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그림자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렇게 그림자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내 등 뒤에 숨어있다. 나는 그림자를 내 발로 지르밟을 수도, 떼어낼 수도 없다.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면 그늘진 곳에 숨어 버리면 된다. 하지만 그건 단지 숨은 것일 뿐, 다시 빛이 떠오르면 그림자도 되살아난다. 그렇다고 늘 그늘진 곳에서 살 수도 없는 일이다. 사람에게 그림자는 평생 따라다니는 존재이다. 나에게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살면 뭐가 달라질까?
눈부신 해가 떠오르고 온 세상이 밝아지면 어두운 밤 그림자에 숨어있던 모든 생명체가 고개를 들고 빛을 향해 활개를 친다. 누군가는 설렘 가득한 하루를 상쾌하게 맞이하고, 다른 누군가는 거북하게 줄어드는 어둠의 그림자를 찾아 몸을 웅크리고 숨는다. 아직 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늘진 곳에서만 생활하는 나의 그림자도 그렇게 웅크리고 숨어버려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 나는 사람의 형태를 한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 세상이 나를 필요치 않고,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여겨 그림자처럼 조용히 숨죽이고 살아갔다.
그러다가 문득, 세상이 날 필요치 않다고 해서 그림자로 살아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냉랭한 겨울이 가면 따스한 봄이 오고, 향기로운 꽃이 피면 스멀스멀 벌 나비가 날아들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빛을 향해 생명의 몸부림을 치는데, 나는 왜 스스로 그늘진 고립을 선택하고 살아야 할까. 나도 그 언젠가 몸부림치며 빛이 났을 텐데.
나에게도 빛이 날 수 있을까.
나도 그림자를 만들 수 있을까.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빛이 나고 싶다.
더욱 열렬히 밝게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
우리 눈에 보이는 밤하늘의 별은 매일 빛나지 않는다. 별은 매일 빛나고 있지만,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가려져 볼 수 없거나, 흐린 하늘 먹구름 속에 갇히면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밤하늘을 올려다봐야 보이는데,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사는 시대에 누가 매일 머리 위를 올려다보겠는가.
타이밍이 잘 맞으면 반짝거리며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가슴속에 그날의 짤막한 순간을 간직하고 매일을 버티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이 매일 반짝거려도 한 번 봐줄까 말까 한데, 매일 빛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나를 누가 봐줄 것인가.
나에게도 분명 빛이 존재하고 있다. 적어도 나의 그림자는 나를 비추는 빛으로 내 등 뒤에 길게 뻗어 드리워졌으면 좋겠다는 일념뿐이다. 살면서 내가 빛났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며 박수를 보내는 그런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소박해도 좋으니 내가 무언가를 했을 때, 나의 존재감이 확연하게 드러날 수 있는 그런 순간을 찾아야 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 알아볼 수 있다면, 어제와 조금 다른 모습으로 한 단계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나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빛을 찾으면, 그 빛은 광활한 사막에서 지표가 되어주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가 되어줄 것이다. 너무 멀리 있어 작고 불안정하게 반짝이지만, 어두운 밤이 오면 길을 잃고 헤맬 때 그 무엇보다 나를 환하게 비추어줄 것이다. 그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어렴풋하게 찾을 수 있다. 뒤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와 함께.
당신의 그림자는 어떤 빛을 찾고 있습니까.